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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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0.1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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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효도를 바르게 하자
이인수 목사(온누리수련원장)

우리나라 노인 중에는 일정한 거처없이 자녀와 친척집으로 전전하며 떠돌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면 자녀들과 떨어져 사는 부모도 많고 자녀가 부모를 모시지 않는 경우도 많다. 자식들에게 만족하는 부모들이 보통 또는 만족까지 합쳐도 극소수에 달한다는 것은 자녀들이 노인이 되면 변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부모를 대할 때는 젊었을 때의 부모인양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노인이 되면 죽음이 실감나면서 마음도 약해져 사회·경제·가정적으로 쓸모없이 돼 노부모를 위해 존경과 사랑의 관심을 보여야 한다.

C.처칠이 말하길 "늙은이는 자연에 의해 저주 받은 두 번째의 어린애다. 첫 번째의 어린 시절보다 성질이 고약해지고 더욱 사악하다. 악하고 매스껍고 고통으로 가득해 숨을 쉴 때마다 삶을 저주하며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했다.

공자의 효경엔 "부모를 자랑하는 자는 남을 미워하지 못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남을 업신여기지 못하니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부모에게 다하면 덕스러운 가르침이 백성까지 미쳐 천하가 본받게 될 것이니. 이것을 천자로서의 효도"라고 했다. 잠언 101~3. 엡 61~3 의 말씀엔 효도의 두 가지 본질이 있다. 기독교의 효도는 유교적인 효도와 다르다. 기독교의 효도는 부모나 조상을 넘어 그들을 세상에 보내준 하나님을 보면서 효도하는 것이다. 엡 61에서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했다. 유교적인 효도관이 혈연적 관계라면 기독교적인 효도관은 신앙적 관계다. 무조건적 순종만이 능사가 아니라 주님 뜻 안에서 순종이 바람직한 효도의 길이라는 말이다. 유교적 효도엔 두 가지 함정이 있다.

첫째 이기주의를 낳게 할 효도가 되기 쉽다. 즉 남의 집 부모야 어찌됐든 내 부모·가족인 울타리 안의 윤리와 울타리 밖의 윤리가 다른 결과를 초래함이 오늘의 현실이다. 둘째는 허례허식이다. 유교적인 제사나 효도 속에 정성이 결여된 허식이 얼마나 많은지. 진정한 효도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 주 안에서 순종하는 기독교의 효도가 첫번째 본질이다. 두번째 본질은, 엡 6 2절의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는 말씀이다. 기독교 효도는 주 안에서 순종과 공경을 중요시한다. 자녀가 아무리 훌륭해도 부모 위에 올라갈 수는 없다. 즉 부모께 순종하고 공경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효도는 두 가지 축복의 약속이 있다. 엡 6 3절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며, 효도하는 자는 하나님이 약속한 축복이 잘되는 일, 장수할 것 등이 있다. 성경에도 요셉, 다윗과 같은 인물이 순종하며 살아 복을 받았다. 부모께 순종하고 공경하자. 하나님의 명령이며 인간에게 내린 첫째 계명이다. 순종에는 '주 안에서'라는 조건이 따르나 공경은 무조건이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사랑을 자녀들에게 무조건 내려줬기 때문이며 제 사랑처럼 자녀위해 눈물, 훈계, 기도로 양육했기 때문이다.

부모께 주안에서 순종하며 공경함으로써 부모께 위탁하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기 축원한다. 잠언 10 1엔'지체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거리'니라. 레오나드라는 청년이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다 홧김에 어머니를 발로 차곤 깊이 뉘우쳐 도끼로 어머니를 찬 다리를 잘라버린 미련한 효도를 해 그 어머니는 병신된 아들 때문에 울며 평생을 지냈다 한다. 자식들이 1년 중 특별한 날 한 두번의 효도를 생색냄은 진정한 효도가 아니다. 하루살이 효도는 소용이 없다. 바른 효도로 네가 잘되고 장수하고 복을 누리기를 축원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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