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선화 언니
사랑하는 나의 선화 언니
  • 정선옥 <음성도서관장>
  • 승인 2014.10.1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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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정선옥 <음성도서관장>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의 언니의 이름은 선화다. 김이설 작가의 신간 ‘선화’를 보는 순간 언니가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순했던 언니는 욕심 많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걸 좋아했던 나에 비해 소극적이고 조용한 아이였다. 엄마가 회초리를 들면 나는 소리 지르며 도망가는 반면에 언니는 그대로 앉아 매를 맞았다. 엄마는 가끔 ‘미련 곰퉁이’라는 표현을 썼다. 

언니는 대학 시험에 떨어진 뒤에 곧바로 취업을 했다. 직장에 근무하며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용돈을 주고 옷을 사주었다. 그땐 집을 떠나 언니와 자취를 했는데 밥을 하고 청소를 하는 건 언니 몫이었다. 아무도 내게 밥을 하거나 청소를 하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언니는 결혼 초에 잠시 고생을 했지만 지금까지 전업주부로 세 아이를 키우면서 마음껏 누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만약 언니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살고 있다면 미안했을 것이다. 

소설 ‘선화’는 작가의 전작에 비해 많이 부드러웠고 많이 따뜻했다. 여전히 소외받는 사람의 아픔을 다루었지만 극한 상황으로 치닫기보다는 적절한 수위를 조절하며 해피앤딩의 결말을 맺었다. 화염상모반을 앓고 있는 선화는 오른쪽 얼굴이 검붉은 반점으로 뒤덮여 있어 어릴 때부터 숨어 지내는 아이였다. 학교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할머니에게도 구박받는 천덕꾸러기였다. 가족 앞에서는 천사의 얼굴을 하고 착하게 굴던 언니는 선화만 있는 자리에서는 이중인격자가 되어 선화를 구박하고 모질게 대한다. 

선화의 가방에 책을 빼내고 화침으로 채운 날, 선화는 그 화침으로 언니 얼굴에 큰 상처를 남긴다. 그나마 선화를 보듬어주고 위로해주던 엄마는 자살한다. 선화는 엄마가 하던 꽃집을 운영하며 독학으로 꽃꽂이를 배우고 제법 예쁜 꽃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기쁨을 준다. 영흠에게 풋사랑을 느끼기도 하지만 선화 곁을 지키고 있는 왜소증의 병준이와 한 줄기 햇살이 비친다. 불 같은 사랑은 아니지만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따뜻한 사랑이 서로에게 필요하다. 언니와의 관계도 조금씩 회복되며 꽃을 통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간다. 

책이 얇아 몇 시간 만에 다 읽었지만 오랜 여운이 남는다. 언니, 가족, 상처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 아이, 신랑 등 내 가족만 챙기기보다는 주변의 소외받는 사람들을 더 따뜻하게 안아줘야겠다는 긍정의 에너지도 생긴다. 

얼마전 충북도중앙도서관 강연회에서 들은 “남의 장점을 부러워하기보다는 내 장점을 강점으로 승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는 박웅현 광고기획가의 말도 떠오른다. 선화가 성형수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현재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는 믿음이, 희망이 생긴다. 

작가는 꽃집을 운영하는 선화를 통해 여자의 로망인 ‘꽃집아가씨’의 꿈을 이룬 듯하다. 하늘거리는 연분홍빛 리시안셔스, 보랏빛 수국, 노오란 프리지어, 장미를 닮은 크림색 라넌큘러스를 조합한 다발은 생각만으로도 사랑스럽다. 책을 덮고나니 꽃을 선물 받고 싶어진다. 아니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것이 좋겠다. 

문득 언니가 보고 싶다. 지금도 내게 한없이 베풀어주는 희생적인 언니. 나보다 외국을 더 자주 나가는 언니 모습이 보기 좋다. 얼마 전 터키 여행을 갔다 오면서 내 선물도 챙겨왔다는데 핑계겸 이 책이랑 꽃다발 사들고 찾아가야겠다. 언니야 사랑해! 늘 내 편으로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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