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보는 바보
책만 보는 바보
  • 김주 희 <청주 수곡중학교 사서교사>
  • 승인 2014.09.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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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김주 희 <청주 수곡중학교 사서교사>

도서 ‘책만 보는 바보’(안소영 저)는 간서치(看書痴)라는 별명을 지녔던 조선시대 실학자 이덕무와 그가 사귄 벗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덕무 선생에게 큰 영향을 준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등 그의 벗들과 스승을 등장시켜 그들 사이에 얽힌 일화를 소개하고, 또 일화에 스며든 학자들의 사상을 자연스럽게 엿볼 수 있게 한다. 혼자 읽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고전을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쓰고 각색했기 때문에 마치 이덕무 선생으로부터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으로 조선시대 실학자들의 사상을 흥미롭게 접할 수 있다.

이덕무 선생은 서얼이라는 신분적 제약 때문에 그의 뛰어난 학문적 능력을 펼치는 것이 힘들었다. 신분 질서를 통해 사회를 견고히 지탱하려 했던 조선 사회에서 서얼 출신인 이덕무 선생이 세상을 버티어 낼 수 있었던 힘은 독서와 친구였다.

‘책을 대할 때마다 이렇게 눈과 귀, 코, 입 등 내 몸의 모든 감각은 깨어나 살아 움직인다. 자신과 연결된 신경과 핏줄을 건드리고, 피가 도는 그 흐름은 심장까지 전해져 마침내 두근두근 뛰게 한다. 감격에 겨운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온 우주가 다시 깨어 일어나기도 한다.’

이덕무 선생은 책과 사람의 마음이 만나는 통로가 눈뿐만 아니라고 말한다. 책 속에서 소리를 듣고, 그림을 그리고, 냄새를 맡기도 하면서 모든 오감을 이용해 예민하고 치열한 독서를 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벗들과 함께 있으면 가슴속에 간직한 포부가 두루마리 종이처럼 저절로 풀려나왔다. 가슴속에 담긴 울분을 토해 놓고 위로받는 것도 벗들에게서였다. 앞으로 다가올 우리들의 시간이 조금은 나아지리라 서로 믿고 기대며 견딜 수 있는 것도 벗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분적 멸시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대사동 백탑 부근(현재의 서울 종로 탑골공원 주변)에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 그리고 그를 이끌어 주는 스승과 모여 살던 시기를 가장 빛나는 시절로 회상할 수 있었던 선생의 모습을 보며 책과 학문을 통해 맺어진 그들의 우정이 얼마나 견고했는지를 짐작해 본다.

우리가 책을 읽으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중·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칠 때까지도 타인과 함께 공부하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다. 물론 수험 기간에 효율적인 시간 관리를 위해 수험 스터디를 해보긴 했지만, 유용성과 마음을 울리는 즐거움은 차이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즐거움은 정규 학교 교육과정을 마친 뒤 동료 교사들과 학생들과의 인문학 모임에서 접했다. 인문학 모임을 하면서 사람들과 모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나누는 것이 위안이 된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든든하다 등 마음속에 뿌듯하고 행복한 감정이 맴돌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인문학 모임에서 내가 벗을 만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선조들이 책에서 말하는 벗과의 사귐은 이덕무 선생과 그의 벗들의 사귐처럼 좋은 세상을 꿈꾸며 치열하게 함께 공부하고, 뜻을 함께하고, 격려해주고 위로해주는 그런 사귐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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