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
  •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문화예술부장>
  • 승인 2014.09.28 18: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요단상
그리고, 그 후로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러갔음에도 변한 것은 사실상 거의 없습니다.

내 글이 충청타임즈에 마지막으로 실린 날은 6월 26일이었습니다. 혹시라도 기억하고 있는 이가 있겠습니까 마는 그날 나는 통합 청주시 출범을 앞두고 <청주, 그 하나됨을 위하여> 라는 제목의 글을 쓴 뒤 홀연히 지면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선친께서는 밥상머리에서 늘 출필고 반필면(出必告 反必面)이라는 가르침을 아끼지 않으셨음에도, 나는 이를 실천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몇년이나 글을 쓸 수 있는 행운을 누렸음에도 온다 간다 말 한마디 없이 제멋대로 지면에서 사라진 것은 두고두고 후회하고 반성해야 마땅한 일이겠지요.

바쁘다는 핑게로 글을 쓰는 일에 진정을 다하지 못하고, 또 이런 저런 이유로 게으름을 피우다 못해 가슴을 닫아둔 채 메마른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 참으로 가여울 지경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괴롭고 두려웠던 것은 진도 팽목항 앞바다에 깊이 묻어둘 수밖에 없는 백성의 고통과 설움을 어쩌지 못하는 글쟁이로서의 참담함이었겠장요. 그리고 그 엄청난 상처를 달래고 보듬으며 다시 용기를 샘솟게 할 수 있거나, 다시는 이 땅과 이 나라에 이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희망할 수 있는 글을 써내려갈 능력과 재주가 없다는 것도 나를 무너지게 한 것이겠지요. 게다가 그런 뜨거운 열정도 남아 있지 않아 서걱거리는 가슴으로 그저 살아있다는 이유 하나에 매달리며 한없이 매몰되는 이 도저한 구속은 또 어찌해야 합니까.

그 사이 한국 사회에는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나라 전체가 들썩일 정도의 일도 있었고, 또 개인사에 국한될 법한 소소한 일이 점철되면서 세상은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늘 그렇듯이 결코 스스로는 가난할 수 없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반드시 부자가 되고야 말겠다는 자본의 욕망에 휩싸여 앞일을 예견하려 하지 않습니다.

어지간한 일이거나, 그도 아니면 공동선과 공동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공연히 남탓으로 돌리거나 ’나만 아니면 돼’라는 식의 지독한 이기주의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에는 아예 접근조차 꺼려하는 듯 합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사상과 갈등, 그리고 대립은 갈수록 극단과 극단으로 치달으며 이 땅에 온전한 평화와 중용의 미덕은 갈수록 엷어지고 있음도 치유되기 쉽지 않은, 말 그대로의 고질적인 ’적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억누른 채 단식을 하면서 진상규명을 애원하는 세월호 유족들 옆에서 치킨집회니 폭식행사를 하면서 배를 채우는 호사를 즐기는 이 극단의 끝이 버젓이 벌어지는 이 나라, 이 백성을 어찌해야 합니까.

그 지경에 이르면 이미 우리에게는 시인이 말하는 <중립의 초례청>은 요원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대립구도에서 어찌 용서와 화해, 그리고 관용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라는 영화 속 대사를 따라하며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위기 극복과 살신성인, 그리고 리더십을 환호하던 영화 <명량>의 그 수많은 관객은 다시 우리 사회 깊숙한, 쉽게 보이지 않는 그늘 속으로 숨어 버린 채 벌써 그 기억은 가물가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당시 자신의 종교와는 관계없이 온 국민이 하나되어 열광하던 일도 어느 새 뇌리에서 지워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외적으로는 부유해도 내적으로 쓰라린 고통과 허무를 겪는 사회 속에서 암처럼 자라나는 절망의 정신에 대한 해독제입니다.”라는 교황의 말은 길이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요.

다시 글을 씁니다. 그러면서 글을 쓴다는 일이 어쩌면 평화와 희망을 잃지않기 위한 작은 날갯짓일 수 있다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합니다.

“가슴에 천하는 구하려는 뜻을 품었다면 마땅히 숨겨야 한다. 부드러움은 단단함을 이길 수 있고, 약함은 강함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은 중국 명대의 재상 장거정의 처세철학입니다.

“부재가 존재를 증거한다”고 말한 자크 라캉의 말을 새기며 끊어졌던 글을 다시 잇는, 그리하여 앞으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반성문으로 삼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