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과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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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4.09.03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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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는 말을 종종 쓴다. 문과 질을 모두 갖춰 빛이 난다는 공자님 말씀인데, 문은 뭐고, 질은 뭔가?

문이 글월문이라서 글씨를 뜻하고, 질은 바탕이니 종이를 말한다는 것은 초보적인 이해다. 문은 글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본래 ‘문’(紋)과 통하므로, 무늬와 바탕의 멋진 어울림을 말한다는 것은 중간수준의 이해다. 그런데 무늬란 꾸미는 것이고 바탕이란 본디 타고난 것이므로 여기서 문은 문명적인 모습이고 질은 자연적인 모습이라고 말한다면 꽤나 높은 수준의 이해다.

대학 때 마음이 안 잡히면 집에서도 하얀 와이셔츠로 갈아입고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나로서는 최고의 복장을 갖춰 입으면서 자세를 가다듬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빗을 머리도 없지만 당시는 베토벤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머리숱이 많았는데, 그런 머리도 단정히 했다. 물론 세수도 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이모가 ‘너는 공부하는데 준비시간이 걸리는구나!’라고 했던 말도 기억난다. 좋은 이야기인지, 나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어린 나에게 “바른 자세!”라고 늘 말씀하셨다. 초등학교 때부터 오늘까지 가장 많이 들어본 말일 것이다. 그런데 나도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 이 말이 되었다. 나는 그러지 못하면서도 아이들에게는 또 그러고 있다. 하다못해 아이 책상 앞에는 이런 말도 붙여놓았다.

‘가끔씩 내가 구부정한 자세로 앉거나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있다. 뭔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표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불편함의 원인을 찾으려 하기도 전에 먼저 기품 있는 자세를 취하려고 애쓴다. 자세를 고치는 그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자신감이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파올로 코엘료의 <흐르는 강물처럼>중에서.’

대학에 자리를 처음 잡으면서 1년까지는 열심히 넥타이를 매고 다녔다. 같이 부임한 양반은 나보다 좀 더 심했다. 언제가 물었더니 ‘2년까지는 그러고 다닐 것’이라고 말한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신임교수가 그런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립대학 교수님들의 복장이 엉망이구나라는 생각도 당시에는 했었다.

나는 아직도 개강 첫 주에는 넥타이를 매고 수업에 들어간다.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면 그런다. ‘내가 갖추니 너희들도 갖추라’는 속내라고. 다행히 가을 문턱에서 학기가 시작되니 맬 만하다.

문질빈빈으로 돌아 가보자. 이 말은 문에 대한 이야기다. 일단 문이 질보다 먼저 나왔으니 그렇고, 문과 질 가운데 빛날 것은 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이 너무 외형만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질 언급을 빼놓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적으로 볼 때 여기서 문은 형식, 질은 내용을 뜻한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할까, 내용이 형식을 규정할까?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옷을 제대로 입으면 태도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아니, 자세라도 바로 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거리에는 국기라도 꽂혀 있어야 애국심이 생기고, 학교에는 교기라도 보여야 동질감을 느낀다.

요즘 괴롭다. 여름이 다 가기도 전에 정장에 넥타이를 맬 일이 생겼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공자님 말씀처럼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니 일단 형식부터 갖추라는 권유를 말이다. 공자는 그것을 예(禮)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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