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의 울음
매미의 울음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4.09.01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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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것을 제일 아쉬워하는 것이 있다면, 이는 아마도 매미가 될 것이다. 여름이 한창을 지나 막바지로 향할 무렵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사방천지에서 끝 모를 울음을 온몸으로 토해내는 것이 매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미의 이러한 안타까운 울음에도 불구하고 여름은 속절없이 가버리고 마는 것이니, 매미가 헛수고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당(唐)의 시인 이상은(李商隱)이 본 매미도 이와 별다르지 않았다.

◈ 매미(蟬)

本以高難飽,(본이고난포), 본성이 고결하여 배부르기 어려운데도

徒勞恨費聲.(도노한비성). 헛되이 수고하여 한스럽게 소리만 허비했네

五更疏欲斷,(오경소욕단), 오경에는 드문 소리 끊어질 듯 이어지지만

一樹碧無情.(일수벽무정). 나무는 무정하여 푸르기만 하네

薄宦梗猶泛,(박환경유범), 낮은 벼슬아치는 운이 막혀 도리어 떠돌고

故園蕪已平.(고원무이평). 고향의 들판은 황폐하여 이미 무너졌네

煩君最相警,(번군최상경), 그대가 가장 놀랄까 걱정이지만

我亦擧家淸.(아역거가청). 나 또한 온 집안이 청빈하다네

 

※ 시인은 매미의 본성을 고결한 선비의 품성으로 보고 있다. 고결함의 소유자는 결코 부(富)와 안락(安樂)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배불리 먹는 것은 일종의 금기이고, 그래도 결코 일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는데, 매미가 영락없이 그렇다고 본 것이다. 매미의 일은 여름이 가지 말도록 쉼 없이 울어대는 것일 텐데, 매미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름은 속절없이 떠나가고 마니, 매미는 결국 헛수고를 하고, 아까운 소리만 낭비한 셈이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낮 동안은 물론이고 밤이 되어서도 울음의 일을 그치지 않았는데, 새벽이 가까운 오경(五更)이 되니, 이제는 힘이 부친 듯 소리가 듬성듬성 들리는 것이 곧 끊어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매미가 매달려 있는 나무는 아는 체도 하지 않으니 무정하기 이를 데 없다. 매미의 애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나무는 묵묵히 계절의 변화에 순응할 뿐이다. 무던 애를 쓰면서도 얻은 게 아무것도 없는 매미의 모습에서 시인은 기박한 운명의 자신을 발견한다. 관운(官運)이 따르지 않는 벼슬아치로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고향에 돌아왔건만, 고향 땅 또한 황폐해 질대로 황폐해져 버린 뒤였다. 지극정성으로 쉴 새 없이 울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름을 떠나보낸 헛수고를 한 매미는, 평생을 우직하고 충직하게 관직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뜻대로 이룬 일이 하나도 없고, 이미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져 고향에 돌아가기도 마땅하지 않은 시인 자신의 모습이다. 그러나 시인은 실망하지 않는다. 온 가족이 청빈하지만, 고결함만은 결코 잃지 않았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여름의 끝자락을 장식하는 것은 매미 소리이다. 여름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기라도 하듯이 온종일 쉬지 않고 울어대지만, 여름은 아랑곳하지 않고 떠나갈 뿐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매미를 시끄럽게 여기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옴을 알리는 전령(傳令)의 다급한 외침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간절한 울음에도 불구하고 여름이 갔다 해서 매미가 결코 헛수고를 한 것이 아니다. 마치 사람들이 열심히 살았음에도 부귀해지지 않았다 해서 잘못 산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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