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여산폭포
망여산폭포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4.08.1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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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한여름의 무더위와 인간사의 번다함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것으로는 산 속의 폭포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나이아가라 빅토리아 이과수 같은 거대한 폭포가 아닐지라도 산속 깊고 높은 곳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힘들여 오른 나그네에게 그 수줍은 자태를 보여주는 폭포로는 중국 강서성(江西省) 구강(九江)시 외곽에 있는 여산(廬山)의 삼첩천(三疊泉)을 첫손가락에 꼽을 수 있다. 이 폭포만큼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이름을 지닌 폭포는 찾기 어려운데, 이는 당(唐)의 시인 이백(李白)의 붓 덕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여산 폭포를 바라보며(望櫻┌瀑布)



日照香爐生紫煙(일조향로생자연) : 향로봉에 해 비치니, 자색 안개 피어올라

遙看瀑布掛前川(요간폭포괘전천) : 아득히 폭포 바라보니, 앞 내가 걸려있구나

飛流直下三千尺(비유직하삼천척) : 공중을 흐르다가 직각으로 삼천 척을 내려 떨어지니

疑是銀河落九天(의시은하락구천) : 은하수가 하늘에서 떨어 진 게로구나

 

※ 여산(廬山)의 진면목(眞面目)을 알지 못한다고 일갈한 소동파(蘇東坡)의 말은 결코 허언(虛言)이 아니다. 주위를 장강(長江)과 파양호라는 큰 물이 둘러싸고 있어서, 안개가 끼는 날이 많기 때문에 여산의 본모습을 보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시인이 여산에 들었을 때도 예외 없이 안개가 자욱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안개가 걷히고 해가 나타나면 그때서야 비로소 산 봉오리가 모습을 나타내게 되는데, 이 순간을 시인의 눈은 놓지지 않았다.

향로(香爐)는 산봉우리 이름이지만, 글자의 의미상 향을 피우는 화로(火爐)를 쉽게 연상시킨다. 재기 넘치는 시인은 이를 놓치지 않고 능란하게 중의법(重意法)을 구사한다. 자연(紫烟)도 마찬가지이다. 산봉우리를 둘러싼 안개만을 묘사하기 위해 자줏빛이라는 말을 썼다면, 이는 다분히 비현실적일 뿐이다. 그러나 자줏빛이 하늘 나라나 신선 세계를 나타내는 데 주로 쓰이는 걸 감안하면, 이 장면에서 시인이 자줏빛이라는 말을 선택한 뜻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높고 신비로운 모습이 인간 세상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연(煙)은 안개와 연기 중 하나를 뜻하는데, 시인은 이 두 가지 의미를 한꺼번에 취하고 있으니, 과연 언어의 연금술사(鍊金術師)로 손색이 없다. 신비한 빛을 발하는 안개이면서 동시에 하늘나라나 신선 세계에서 누군가 피우는 향(香)의 연기(煙氣)인 것이 바로 자연(紫煙)이다. 시인이 폭포를 바라보고 있는 지점은 폭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멀리서도 선명히 보일 만큼 웅장함을 말하면서, 시인은 특유의 능청스런 허풍을 구사한다.

앞 내(前川)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시인의 눈앞에 펼쳐진 것으로 인식되는 그 어떤 긴 냇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바로 그 냇물을 누군가가 뚝 잘라다가 하늘에 걸어 놓았다(掛)는 것이다. 과연 능청과 허풍의 달인(達人)이다. 내친 김에 시인은 자신의 허풍을 마치 진짜인 양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능청을 떤다. 공중을 평평히 흐르다가 느닷없이 직각으로 아래로 떨어지는 게 삼천 척이라고 한 것이나, 그것이 하늘나라의 은하수와 모습이 방불하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한여름의 무더위와 짜증을 피하기 위해서는 산속의 폭포를 찾는 것도 한 방법이다. 실제로도 정서적으로도 이보다 시원한 여름 풍광을 찾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를 펴고 번다한 인간 세상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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