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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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0.10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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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깨어 살아가는 삶
김 훈 일 주임신부(초중성당)

성당에 부임을 하고 보니 사제관은 무인경비시스템이 운영되고 있었다. 그래서 멀리 외출을 하는 날이면 이 경비시스템을 작동시킨다.

얼마 전 산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문틈에 작은 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무인경비업체에서 남겨놓은 것인데, 보안경보가 울려 와보니 할머니 한 분이 신부님께 음식을 가져오셨다가 경보장치를 작동시켰을 뿐 큰 이상은 없다는 내용이었다.

문 앞에는 혼자 밥해먹고 사는 젊은 신부를 위한 할머니의 작은 정성이 담긴 비닐봉투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할머니께서 이제는 맛있는 반찬을 해 주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날 놀라셨던 것 같다.

반갑게 나와 줄 신부가 아니라 무장을 하고 사이렌을 울리며 들이닥친 경비업체 직원을 보고 사제관이 무서워지셨나 보다. 생명감 없이 깜박이는 전자장비의 센서가 깨어살지 못하는 나의 삶에 경고를 보낸다. 집은 지키고 살아가지만 젊은 신부를 아끼는 할머니의 사랑은 지키고 살지 못했다.

내 소유를 지키느라고 애쓰지만 정작 내 자신은 잘 지키고 살아가는지 걱정이 앞선다. 형식적인 직무에 충실할 뿐 메마른 사랑으로 신자들과 세상을 대하며 깨어 살지 못하고 그저 생명감 없이 깜박이는 전자장비의 센서처럼 살고 있는 것이 내 자신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는 깨어 살아야 한다.

집을 지키고, 재산을 지키고, 가족을 지키고, 명예를 지키고, 권력을 지킨들 우리 자신을 지키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생명은 늘 하느님의 충만한 활력으로 가득하다.

이 생명력은 자신의 삶에 스스로 주인이 되어 하느님을 찾아가고 이웃을 향해 나아가도록 우리의 이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헛된 것을 찾느라고 그 길에서 벗어나 죽음과 멸망으로 들어서기도 한다. 그래서 깨어 사는 삶이 필요하다.

이 깨어있음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죄와 악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경계의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귀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기다림의 의미이다. 즉 전자는 자신에 대한 경계이며, 후자는 타인을 향한 사랑의 손길을 말한다.

먼저 경계하기 위해서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자각(自覺)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경계하는 하는 마음을 통해서 우리는 세상의 악과 죄를 위해서 투쟁해야 할 자신의 의무와 책임, 많은 사람들을 위한 헌신과 희생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스페인 출신의 예수회 디에고 데 판토하(1571~1618)신부가 1614년에 북경에서 쓴 '七克(칠극)'은 죄와 투쟁하고 스스로 깨어 살아가는 방법을 잘 설명한다.

인간을 죄로 이끄는 일곱 가지 근원이 있으니 그것을 칠죄종(七罪宗)이라고 한다. 칠죄종은 '교만', '인색', '음욕', '분노', '탐욕', '질투', '나태'를 가리킨다.

이는 칠극으로 이겨낼 수 있는데, 일곱 가지 마음의 병과, 그것을 치료하는 처방에 관한 것이다.

그 일곱 가지는 이렇다.

①겸극오 겸허한 마음으로 오만함을 극복한다.

②인극투 사랑으로 시기와 질투를 극복한다.

③인극노 인내심으로 분노를 극복한다.

④정극음 정숙함으로 음욕을 극복한다.

⑤사극린 베푸는 마음으로 인색함을 극복한다.

⑥담극도 맑은 생활로 탐욕을 극복한다.

⑦근극태 부지런함으로 게으름을 극복한다.

자신의 마음을 먼저 다스리고 경계해야 한다. 그런 후에 집도 재산도 가족도 명예도 지켜지는 것이다.

또 기다리는 마음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그 기다림은 사랑으로 시작한다.

고단한 노동에 시달리다 돌아올 지아비를 기다리는 아내의 마음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올 손자를 기다리는 할머니의 마음으로, 추운 겨울밤을 보냈을 노숙자를 기다리는 어느 봉사자의 마음으로, 반세기가 지났지만 북녘의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이 땅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양심수의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그 사랑이 없으면 깨어있지 못하고 설사 깨어 있다고 할지라고 그것이 적인지 아군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깨어 있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을 말한다.

늘 깨어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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