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과 너비
지름과 너비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4.07.31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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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운동 종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사람끼리 하는 경기도 있고 승마처럼 사람과 짐승이 함께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끼리 하면서도 맨몸만이 아니라 도구적 인간답게 채를 들고 하는 경기도 있고 탈것을 쓰는 경기도 있다. 또한 신체에 무엇인가를 착용하거나 부착하는 경기도 있다. 신발에 날을 붙이고 하는 경기와 주먹에 솜을 두르고 하는 경기가 유명하다. 탈것도 이제는 많아져서 자전거, 썰매로 늘어나고 있고 발에 뭘 붙이는 것도 스케이트부터 스키까지 종류도 다양해졌다. 썰매 종류도 혼자, 둘, 넷 등 많아지고 있으며 눈을 지치는 것도 모글, 노르딕, 활공까지 별의별 것이 다 있다.

만일 철학자에게 운동경기를 나눠보라고 한다면(전문용어로 범주화 곧 카테고리를 정해보라고 한다면) 이렇게 나눌 것 같다.

첫째, 맨손으로 하는 경기. 예) 권투, 수영, 레슬링 등.

둘째, 몸에 뭔가 붙이는 경기. 예) 스케이트, 권투, 유도(옷을 이용하니까) 등.

셋째, 손으로 뭔가 쥐는 경기. 예) 배드민턴, 탁구, 테니스, 야구 등.

넷째, 둘째와 셋째를 섞은 경기. 예) 아이스하키, 노르딕 스키 등.

이런 데 이런 분류는 복잡해서 가장 많이 쓰는 분법은 역시 ‘공을 갖고 노느냐 마느냐’로 나뉜다. 따라서 운동 종목에서 구기(球技)는 빼놓을 수 없다. 공은 역시 재밌는가보다. 어른들의 스포츠도 대부분 공을 갖고 논다는 점에서 강아지가 공을 던져주면 노는 것이나 아이들이 공을 좇는 것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공을 갖고 노는 방법은 실로 다양하다. 맨손으로 때리는 것, 그물채로 때리는 것, 망방이로 때리는 것 등 여러 가지다. 맨손은 배구(排球)라고 하고 그물채는 테니스나 정구(庭球)라고 하고 망방이는 야구(野球)라고 한다. 한자권도 나름 부르는 이름이 달라 테니스와 야구를 ‘망구’(網球)나 ‘봉구’(棒球)라고 부르기도 한다. 탁구(卓球)도 여전히 공을 갖고 노는 것이고 공이 찌그러져 잡기는 쉬워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Rugby)도 있다. 럭비는 손으로 잡고 뛰는 축구가 발생한 지역의 이름을 따서 부르기 시작했고 번역어인 탁구나 정구나 야구는 모두 노는 장소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 모두 번역의 기초에는 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혹여 럭비는 공이라고 부르기 뭐하다는 반문이 나올 수 있으나 중국어에서는 정확한 모양의 구는 아니지만 그것이 감람나무 열매를 닮았다는 점에서 ‘감람구’(橄欖球)라고 부르니 모두 구기라 하는 데 지장은 없다.

그런데 내가 어리석게도 최근에야 깨달은 것은 모든 구기가 공의 크기에 따라 경기의 기준이 되는 줄의 굵기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공 지름에 따라 줄 너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축구공의 지름이 30㎝이면 축구장에 그어진 줄의 너비도 그에 반 정도에 해당되고 테니스공의 지름이 10㎝이면 테니스코트에 그어진 줄의 너비도 그의 반 정도에 해당되고 탁구공의 지름이 5㎝이면 탁구대에 그어진 줄의 너비도 그의 반 정도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물론 공과 줄 사이에는 경기장이라는 무대의 크기도 상관된다. 축구장에서는 수박만한 공, 테니스장에서는 주먹만한 공을 쓴다. 그런데 농구나 배구처럼 공은 축구공만하지만 경기장이 축구장만큼 크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공의 지름과 줄의 너비는 비례한다. 아, 이제야 줄만 보아도 공을 알게 되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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