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의 위엄
태산의 위엄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4.07.28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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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올망졸망 야트막한 동네의 야산들은 사람들에게 정겨움으로 다가오지만, 우뚝 솟은 큰 산은 이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산세는 사람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하고, 산속의 비경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람들은 이렇게 큰 산에는 영험한 기운이 있는 것으로 믿는 경향이 있다. 중국의 오악(五嶽) 중 동악(東嶽)인 태산(泰山)은 그 기험한 산세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데, 그 산의 위엄(威嚴)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당(唐)의 시인 두보(杜甫)는 표현의 달인이었지만, 그 역시 태산(泰山)의 위엄을 그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 대종산을 바라보며(望岳)



岱宗夫如何(대종부여하), ;대종산은 무릇 어떻게 하길래

齊魯靑未了(제노청미료). ;제나라와 노나라에 걸쳐 푸름이 끝이 없게 할까?

造化鐘神秀(조화종신수), ;천지에 신령함 여기에 다 모이고

陰陽割昏曉(음양할혼효). ;음지와 양지로 어둠과 밝음이 갈라지는구나

湯胸生層雲(탕흉생층운), ;층계구름 솟아나니 가슴 속 시원하고

決자入歸鳥(결자입귀조), ;새들 돌아가는 모습에 눈을 크게 뜨누나

會當凌絶頂(회당능절정), ;반드시 정상에 올라

一覽衆山小(일람중산소). ;뭇 산이 작음을 한눈에 굽어보리라



※ 대종(岱宗)은 태산(泰山)의 다른 이름이다. 시인은 우선 산의 규모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로 치면, 산동(山東) 지역의 두 나라인 제(齊)와 노(魯)가 푸른 것은 모두 태산 덕이라고 설파한다. 물론 과장이지만, 태산이 그 만큼 광대한 영역에 걸쳐 있음을 재치있게 표현한 것이다. 시인을 감탄시킨 것은 산의 크기만이 아니다. 산의 구석구석에 널려있는 기이하고 오묘한 모습들과 산의 웅장함에 의해서 조성되는 극명한 명암의 대비가 시인으로 하여금 감탄을 넘어 영험함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신비롭고 빼어난 경관들을 이렇게 한 데 모을 수 있는 존재는 조물주 밖에 없고, 그 조물주의 작품이 바로 태산이라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상의 운행 원리인 음양이 나뉘는 것도 바로 이곳, 태산에서이다. 태산을 기점으로 한 쪽은 어두운 음(陰)의 세상으로, 한 쪽은 밝은 양(陽)의 세상으로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고 시인은 본 것이다. 넓은 곳에 푸른 빛을 드리워 주고, 온갖 아름다운 경관을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태산이 음양의 운행을 주관한다고 본 것이다.

시인이 태산에 매료되어 정신이 없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바라보니 찼ㆎ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 모습에 시인의 가슴은 시원하게 뚫렸다. 또 한편으로 저녁이 되어 새들이 둥지로 돌아가는 모습도 보였다. 이 꾸밈없는 장관에 시인의 눈은 절로 크게 떠졌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다짐한다. 언젠가 반드시 태산 정상에 올라, 태산에 오르면 나머지 산들이 작게 보인다고 한 공자(孔子)의 말을 확인해 보겠노라고.

사람들은 거대한 산을 보면, 거기에 무언가 영험한 기운이 있는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동경해 마지않는다. 온갖 비경(秘境)에 취하기도 하고, 산의 위세에 경외심을 느끼기도 한다. 가끔은 이러한 산에 가서 삶을 관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제는 부쩍 가까워진 거리에 있는 태산에 가서 그 위엄을 느껴보라. 삶이 새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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