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거의 모습
은거의 모습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4.07.0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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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다른 사람들과 이런저런 관계를 형성하면서 살아간다.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 등 사람들의 관계는 무궁무진하다. 이러한 인간관계는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사는 맛을 느끼게 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문득문득 모든 관계를 끊고 혼자서 살아가는 것을 꿈꾸곤 한다. 그러나 대개는 생각에 머물 뿐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남의 눈을 피해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 남으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혼자 사는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은 경우도 있겠지만, 은거(隱居)의 보통 유형은 세속적 가치와 인위적 삶의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자연의 일부로서 무념무상의 상태를 견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唐)의 시인 유장경(劉長卿)은 지인(知人)의 삶을 통해 은거의 전형적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 남계 상산도인의 은거처를 찾아서(尋南溪常山道人隱居)

一路經行處,(일노경항처), 지나다닐 만한 곳이라곤 겨우 길 하나

莓苔見履痕.(매태견리흔). 이끼 위에 발자국 보이고

白雲依靜渚,(백운의정저), 흰 구름은 고요한 물가에 어렸는데

芳草閉閑門.(춘초폐한문). 향기로운 풀에 한적한 문 닫혀있네

過雨看松色,(과우간송색), 비 지나간 뒤 소나무 자태 바라보며

隨山到水源.(수산도수원). 산을 따라 물 끝에 다다르네

溪花與禪意,(계화여선의), 개울가의 꽃과 선정에 든 마음

相對亦忘言.(상대역망언). 마주대해도 또한 할 말을 잊었네



※ 시인의 지인인 상산도인이 거처하는 곳은 아주 외딴곳이다. 사람이 지나다닐 만한 길이 겨우 하나 나 있을 정도이다. 상산도인 외에 그 길을 다닐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속과 절연한 채 은거하는 그를 찾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상산도인조차도 그 길을 거의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이끼가 파랗게 끼었고, 어쩌다 거기를 밟게 되니 신발 자국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 아닌가? 이처럼 은자(隱者)의 거처는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그렇다고 은자(隱者)에게 함께 할 벗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요한 물가를 서성이는 흰 구름이며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언제나 닫혀 있는 사립문 안의 향기로운 풀은 은자(隱者)에겐 둘도 없는 친구들이다. 은자는 이 친구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곤 하는데, 그 내용은 물론 세속의 일들과는 무관한 것들이다. 은자(隱者)는 자연을 벗 삼기도 하지만, 자연을 즐기기도 한다.

비가 지나간 뒤 부쩍 선명하고 깨끗해진 소나무의 자태를 넋을 잃고 바라보기도 하고, 산길을 쫓아 올라가 계곡물의 시원지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이것이 은자(隱者)가 자연을 즐기는 방법이다. 개울의 꽃과 상산도인의 선정(禪定)에 든 마음이 서로 마주하는 것은 황홀하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말로 그것을 표현할 수는 없다. 이미 말을 잊은 것이다.

누구나 은자(隱者)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은자(隱者)에 대해 편견을 가질 필요도 없다. 세속적 삶의 방식으로는 결코 가능하지 않은 삶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인생을 더욱 황홀하게 하는 마력임이 분명하고, 그것은 세속의 사람들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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