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 내보내기
근심 내보내기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4.05.26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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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공평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근심일 것이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지위가 높으면 높은 대로, 지위가 낮으면 낮은 대로 근심은 있게 마련이니 말이다. 인간은 삶을 영위하는 동안은 적어도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근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문제는 근심을 어떻게 푸느냐 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근심이란 놈이 저절로 알아서 물러가는 것일 텐데 당(唐)의 시인 이백(李白)은 그 방법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 근심이 저절로 떠나다(自遣)

對酒不覺瞑(대주부각명) : 술잔 마주하니 날 저문 줄 몰랐는데

花落盈我衣(화락영아의) : 꽃잎은 떨어져 나의 옷깃에 가득하구다

醉起步溪月(취기보계월) : 술 깨어 일어나 달 비친 개울을 걸으니

鳥還人亦稀(조환인역희) : 새는 둥지에 깃들고 사람의 자취도 드물구나

 

※ 시인은 대낮에 술을 마주하고 있다.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마시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고 시인에게 술 자체가 중요한 것도 아니다. 시인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근심이었고 이 근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시인은 대낮에 술을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고로 술을 근심을 잊게 해주는 물건(忘憂物)이라고 불러 왔지만 시인의 경우는 이 이름이 꼭 부합한 것 같지는 않다. 시인은 술을 마셔서 스스로가 근심을 잊고자 하는 기존의 틀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아예 근심이 저절로 알아서 떠나가도록(自遣) 하는 진일보한 개념을 적용시키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오로지 술에만 몰두하고 있다. 오죽하면 날이 어두워진 것을 몰랐을까? 근심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존재감을 전혀 인정받지 못한 근심은 자존심이 상해서 아예 떠나버린다는 발상인 것이다. 이른바 ‘근심 무시하기’이다. 무시를 참지 못해 떠나버린 근심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엉뚱하게도 떨어진 꽃잎이었다. 시인의 옷자락에 꽃잎이 가득하였던 것이다. 참으로 기발하면서도 감각적이지 않은가?

시인은 술을 취하기 위해 마신 것이 아니다. 근심이 알아서 떠나도록 하기 위해 마신 것이었고 결국 근심은 떠났다. 그러자 취기를 느낀 시인도 술 마시기를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근심과 무관해진 시인은 이제 한가롭게 냇물에 비친 달을 보며 걷기에 나섰다. 주변을 둘러보니 새들은 숲속 둥지로 돌아갔고 사람들 또한 집으로 돌아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이러한 모습들은 시인이 추구하던 시인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였다. 대낮부터 날이 저문 줄도 모르고 술을 마주하고 있을 때 저절로 떠나간 근심 때문에 마침내 시인은 탈속(脫俗)의 경지에 든 것이다.

사람에게 근심은 숙명이다. 그러나 없애는 게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욕심을 버리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사는 것이 근심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술을 마셔서 근심을 풀 수는 없다. 술을 마신다는 것은 속세와의 절연과 근심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상징적 행위일 뿐이다. 주의할 것은 술을 마실 때는 술 생각 외에 어느 것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근심이 알아서 떠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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