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령부득
요령부득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4.05.2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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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우리말에서 점차 사라지는 낱말이 요령(要領)이 아닐까 한다. 나도 요령이란 말이 떠오른 것은 바로 매뉴얼에 해당하는 우리말이 무엇일까하는 생각에서였다.

매뉴얼(manuel)은 손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크게는 사람 힘으로 하는 어떤 것을 뜻한다. 매뉴(manu)는 ‘손, 손으로’를 가리키는데,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이 매뉴 큐어( manu cure) 아닐까 싶다. 따라서 ‘발에다 매뉴 큐어를 바른다’는 것은 이상한 표현이다. ‘발을 손 관리한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원고를 ‘매뉴스크립트’(manus cript)라고 부르는 것은 아직 인쇄되지 않은 수고(手稿)라는 뜻에서 비롯됐다. 타자본도 아직 인쇄된 것은 아니므로 이에 속한다. 익숙한 표현으로는 ‘매뉴팩토리’(manufactory)가 있는데, 팩토리가 기계를 쓰는 공장이라면 사람이 직접 손으로 만드는 제조공장을 가리킨다. 수공업(手工業)의 뜻에 가깝다. 요즘은 핸디(handi)라는 표현도 더 많이 쓰인다.

매뉴얼은 그런 점에서 손과 관련된 모든 것을 가리킨다. 손안에 들어오는 어떤 것이든, 수동으로 조작하는 어떤 것이든, 모두 매뉴얼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다. 소책자, 입문서, 편람, 교본, 참고서, 설명서 등이 모두 매뉴얼이다.

나는 물건에 딸린 매뉴얼을 잘 보지 않는다. 직접 해보면 되지 굳이 책자를 보면서 일일이 따져볼 필요가 있나 싶다. 최신 기계는 어쩔 수 없이 한번 읽는다. 내가 상상하지 못한 기능이 숨겨져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필요했던 기능을 발견하는 기쁨은 ‘사람은 기계적 동물’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자동차 매뉴얼도 열심히 보는 편이다. 별 쓸데없는 기능도 많지만 행여나 모르는 것이 있을까 싶은 호기심에서다. 그래봤자일 때가 많지만 말이다.

내가 기계나 상품의 매뉴얼을 잘 보지 않는 것은, 변명하자면, 굳이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상품이나 기계는 그것의 용도가 분명히 있고, 바로 그 중요한 기능을 발휘하면 될 뿐이지, 그 자체에 어떤 본질적인 목적이 담겨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 미국생활에서 생각이 좀 달라졌다. 미국은 매뉴얼 국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매뉴얼이 참 많은 나라다. 어디서나 매뉴얼을 볼 수 있다. 다른 것은 우리나라의 매뉴얼은 기계라는 수단을 활용하기 위해 늘 붙어있는 반면, 미국의 매뉴얼은 사람이라는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많다는 점이었다.

내가 있던 대학에서는 심지어 ‘미국에서 경찰관을 대하는 법’이라는 손 안에 꼭 잡히는 노란색바탕에 인쇄된 매뉴얼을 나누어주었다. 노란색 홑겹이라서 지갑에 넣어두어도 좋을 정도였다. 아직도 첫 문장이 기억난다. ‘미국에서 경찰관은 권위가 있으니 반드시 존경할 것’이었다. 쉬운 말로 풀면, ‘잘못 덤볐다가는 큰코다친다’는 말이었다. 유학을 다녀온 동료의 표현으로는 ‘미국에서 경찰관한테 잘못 까불었다가는 총 맞는다’는 것이었고.

이런 것이 요령이다. 그밖에도 세금을 내는 요령, 밥 먹는 요령, 이사 가는 요령, 편지붙이는 요령, 전화 거는 요령, 세탁기 돌리는 요령 등 모두 요령이다. 우리말에서도 ‘화재시 탈출요령’, ‘위급시 대피요령’ 등도 귀에 익숙하고, 하다못해 ‘상관을 대하는 요령’에서 ‘연애요령’까지 요령은 참으로 많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째서 요령부득(要領不得)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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