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라는 그 이름
그리움이라는 그 이름
  •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4.05.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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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아침 일찍 차를 달려 시골에 갔다. 그리운 어머니가 있는 농촌 마을이 짙푸른 녹음을 펼쳐놓고 딸을 맞이했다. 예고 없는 딸의 방문에 어머니는 집을 비우고 없었다. 청량한 아침을 지키는 강아지들만이 꼬리를 바람결에 흔들고 있었다. 수화기를 들고 어머니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엄마 나왔어. 빨리와요~.” 딸은 수화기 너머 어머니 목소리에 아이로 돌아가 응석을 부린다.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고 어머니의 신발 끄는 소리가 들린다. 반가움에 겨운 어머니의 목소리가 모습보다 먼저 다가와 귓전에 출렁인다.

“에고~ 우리 딸 어쩐 일이야? 전화도 없이….”

어머니의 목소리에선 기쁨이 뚝뚝 떨어진다.

“그냥 왔어.”

딸은 ‘보고 싶어서’란 말을 애써 삼키며 담담하게 ‘그냥’이라고 내뱉는다.

자식들 뒷바라지에 어느덧 고희를 훌쩍 넘긴 어머니가 나무 등걸 같은 손을 내밀어 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싱글벙글하신다. 오랜만에 어머니와 함께 도자기를 만들며 한숨반 웃음반으로 펼쳐 놓으시는 어머니의 지난 시간들을 듣는다. 푸르렀던 아픈 시절을 소설로 쓰고 싶다는 어머니의 말에 딸은 박수를 보낸다.

딸, 저녁이 되어 석양을 등진 어머니를 홀로 남기고 돌아오며 문득 知行合一(지행합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

소크라테스는 知(지)는 德(덕)이고 無知(무지)는 惡德(악덕)이라 하였다. 또 지식의 보편주의 절대주의를 강조하였다. 이에 반해 공자는 德(덕)은 知(지)보다 상위개념이며 知(지)가 德(덕)으로 나아가기 위한 勇(용)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상대적 특수적 지식을 논하였다.

딸은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고 살고 있는가~. 물론 지식과 도덕성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루소의 말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행하려고 노력은 해 보았는가?’ 홀로 어머니를 남겨두고 돌아오면서 늘 자신의 행위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합리화를 해 버린다. ‘공자의 말처럼 德(덕)은 勇(용)이라는 의지에 의해 발현되는 것이지 知(지)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21세기는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그 지식도 수명이 짧아지므로 소크라테스가 말한 절대적 보편적 진리는 없고 시대와 상황과 대상에 맞는 상대적인 진리만이 존재한다’고 자꾸만 자꾸만 속으로 자신을 다독여 본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딸의 마음속 한켠에는 ‘인류의 가슴엔 언제나 절대적 보편적 진리는 갖고 있다’는 명제를 떨쳐 버릴 수 없다. 그중 하나가 孝(효)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딸, 어머니를 떠올리면 매번 가슴이 아리다. 항상 함께 할 수 없음을 알기에 될 수 있으면 자주 찾아보리라 다짐한다. 자식을 가진 어미가 되고나니 어미의 그리움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앞으로 지행합일 하려 노력해야 겠다고 되뇌인다. 자주 찾아뵙는 것이 효라는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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