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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4.05.1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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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고향을 다녀왔습니다. 언제부터인지 고향에 간다는 설렘보다는 진한 슬픔이 먼저 느껴지는 것은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서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친정에 가던 그 날은 여느 때처럼 우선 뒷밭에 누워계시는 부모님을 뵙고 어릴 적 뛰놀았던 동네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수십 년 세월이 흘렀건만 무엇 하나 변한 것 없이 그대로 남아 있더군요. 고향집 큰 감나무 잎은 햇빛에 연초록으로 반짝이고 화단에는 목단이 얼추 지고 그 자리에 작약 꽃이 이제 막 꽃망울 터트릴 준비에 한창이었습니다.

돌담을 따라 가니 파랗게 수놓은 담쟁이덩굴이 바람에 일렁입니다. 오래 전부터 가슴 속 남아 있던 그리움을 흔들어 깨우는 것 같습니다.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마당가의 샘물로 갈증을 해소하며 이곳으로 와서 편안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유달리 마음을 끄는 자리가 있고 그럴 때마다 언젠가 한 번 와 본 적이 있는 것처럼 친근해지곤 했지요. 훗날 이렇게 수려한 고장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됩니다. 그도 아니면 좋은 사람과 다시 한 번 찾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런데 고향을 찾으면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아닌 단 두 분, 부모님하고 다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다시는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더 깊이 사무치는 것일까요?

돌아올 때는 새로 난 고속도로를 탔습니다. 바다를 연결한 다리가 많은 곳입니다. 다리를 지날 때마다 자동차가 휘청거리는 것을 느껴 나도 모르게 핸들을 꽉 움켜쥐었습니다. 몇 개의 다리를 지나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자동차가 휘청거리는 듯해서 속도를 늦추고 나니 그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더군요.

한참 달리다가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다리를 지나니 양 옆으로 산이 펼쳐지고 논밭이 나오면서 무언가 나를 지지해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편안하게 운전을 할 수 있었던 겁니다.

지난번 집단상담시간이 생각났습니다. 수강생 중 한 분이 자기가 결정한 일이 최선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가족들이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분의 이야기를 들은 교수님께서 그 분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누구에게서든지 지지 받는 것이라면서 가족이 안 되면 애인이라도 애인이 없으면 친구라도 좋으니 누구에게든 지지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상담을 했습니다.

그때는 별 생각 없이 지나갔는데 지금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문득 큰 깨달음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누군가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 그것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를 바로 설 수 있게 해주고 두려움이 없게 해주며 무슨 일이든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거죠. 잠깐 건너는 다리에서도 불안함을 느끼며 정신이 분산되는데 긴 인생을 살아가면서 든든한 지지 역할을 해주는 그 무엇이 없다면 큰 혼란이 올지 그려집니다. 가족이든 친구든 애인이든 더 나아가 혼자 살아가기에 부족한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요건이 되겠지요.  나 역시 부족하고 또 부족하지만 누군가가 필요하다면 어디서든 기꺼이 가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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