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
잔인한 4월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4.04.29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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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내가 시골에 사는 걸 행복으로 느끼는 건 다름 아닌 봄 때문이다. 개나리가 이른 봄소식을 알리고 지나가면 벚꽃이 그 뒤를 이어 꽃비를 내린다. 벚꽃이 진 자리를 붉은 영산홍과 분홍빛 복사꽃 물결이 채워 주고, 도로 곳곳에 화려한 꽃잔디가 피어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요롭다. 이제 라일락 향기가 사라지면 곧 여름이 올 것이라는 꽃이 알리는 일기 예보를 듣게 될 것이다.

작은 소읍에 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때가 되면 도시로 떠날 준비를 했고 친구들을 만날 때도 내가 서울로 올라가곤 했다. 그곳의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찻집과 음식점에서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고 와야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듯 한 착각에 빠지곤 했는데 요즈음은 이 소읍에 살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꽃들을 3월부터 5월까지 실컷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눈만 들면 꽃들이 널려 있어 행복하게 해 준다. 거기다가 달이라도 뜨는 날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화에 월백’ 한다는 옛 시인의 글귀가 생각난다. ‘금상첨화’에서‘비단 위에 꽃’이라고 할 때의 꽃은 비단처럼 화려하지만 하얀 배꽃이 달빛 아래 더욱 하얗게 빛날 때는 금상첨화 못지 않는 아름다움에 눈이 부시다.

이런 날은 또 해찰부리며 오래도록 걷는 습관이 있다. 천변을 지나다가 문득 꽃 잔디 앞에 앉는다. 어릴 적 동화책에서 봄에 잠깐 피었다가 지는 꽃은 어린 아이가 죽으면 그 영혼이 꽃으로 피어난다던 구절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런지 꽃을 보면 슬픔도 같이 느껴진다. 세월호의 꽃다운 학생들의 죽음이 생각나서 마치 그들의 영혼인양 꽃을 들여다본다. 임형주가 부른 ‘천 개의 바람이 되어’란 노래가 떠올라 꽃들 앞에 오래오래 앉아 있었다.

작자 미상의 시를 노래했다는데 미국의 911테러 등 세계적으로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 있을 때 불려지는 노래였다. 그런데 이 노래가 아름다운 봄날에 우리의 가슴을 울릴지 누가 알았겠는가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말아요. /나는 그 곳에 없어요. /나는 천 개의 바람/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가을엔 곡식들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 될게요/ 겨울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될게요/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 줄게요/밤에는 어둠 속에 별 되어 당신을 지켜 줄게요/ 나의 사진 앞에서 있는 그대/제발 눈물을 멈춰요.’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정말 어린 학생들이 무책임하고 무능한 어른들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걱정하는 듯 느껴져 더욱 가슴이 아리다. 그 영혼들은 어둡고 차가운 바닷속을 떠돌지 않고 천개의 바람이 되어 자유롭게 떠돌며 곡식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 되고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되기를 바래본다.

이렇게 많은 생명들이 가려고 올 봄 꽃들도 그리 앞 다투어 피었다 졌나보다. 내년부터는 봄꽃을 보아도 마냥 행복해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한 어린 생명들의 넋이 꽃으로 핀 양 어여삐 여기며 잔인한 4월을 기억해야 될 것 같아 사뭇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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