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보내며
봄을 보내며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4.04.2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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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기쁨도 슬픔도 행복도 고통도 흐르는 세월에게는 그저 무게가 전혀 다르지 않은 승객일 뿐이다. 아름답고 온화한 봄은 사람들에게는 축복이지만 세월에게는 그저 하나의 손님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봄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기실 무심한 세월에 대한 원망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초목의 이파리가 연록에서 진초록으로 바뀌고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봄이 가는 것을 느낀다. 버드나무는 여니 초목과는 달리 꽃 아닌 솜을 피우고 이 솜은 땅에 떨어지는 대신 하늘을 날아다닌다. 물론 꽃을 피우고 꽃이 지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버들 솜이 날리는 것을 보고 봄이 감을 느끼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버들 솜이 날리는 것을 보고 송춘(送春)의 정(情)을 가누기 어려웠다.

◈ 버드나무 골목길(柳巷)

柳巷還飛絮(유항환비서) : 버드나무 골목에 다시 버들 솜 나니

春餘幾許時(춘여기허시) : 봄날이 얼마나 남았으랴

吏人休報事(이인휴보사) : 관리들은 일을 올리지 말게나

公作送春詩(공작송춘시) : 그 분께선 봄을 보내는 시를 짓고 계시니

 

※ 시인은 공무(公務)를 보기 위해 관아(官衙)에 가는 중이다. 가는 길목에 버드나무가 양옆으로 늘어진 골목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버들 솜이 날리고 있었다. 이 모습은 시인에게 처음이 아니었다. 작년에도 또 재작년에도 그랬었다. 몇 해의 경험을 통해 시인은 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였다. 그래서 시인은 잠시 바쁜 공무(公務)를 멈추기로 했다. 결코 공무(公務)를 소홀히 여겨서가 아니었다.

일상적인 공무(公務)는 잠시 미루었다 처리해도 무방하지만 봄이 떠나는 것은 결코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봄은 이미 떠나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만큼 시인의 마음은 절박하였다. 관리들에게 업무 보고를 잠시 멈추게 하고 부랴부랴 송춘시(送春詩)를 짓기 위해 붓을 잡았다. 시인이 송춘시(送春詩)를 지은 것은 봄이 가는 모습을 그리거나 봄을 보내는 아쉬움을 토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시인에게 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다. 자신을 찾아온 귀한 손님인데 이 손님은 버들 솜이 골목에 날면 어김없이 떠나는 손님인 것이다. 그런데 마침 아침 출근길에 골목에 버들 솜이 날리는 것을 목도한 시인은 그때서야 바쁜 공무(公務)에 잊고 있었던 귀한 손님이 생각났고 그 손님이 떠나야 할 때가 됐음을 직감하였다. 그래서 시인은 만사를 제쳐두고 떠나는 손님에게 드릴 송시(送詩) 짓기에 나선 것이다. 봄이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구구절절이 토로하는 대신, 봄을 손님으로 의인화(擬人化)하여 송시(送詩)로써 배웅한다는 시인의 발상은 참으로 기발하고도 재치가 넘친다.

세월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름답고 화창한 봄이 가는 것은 더욱 아쉽다. 그러나 아쉬워만 한들 무엇 하겠는가? 어차피 가야 할 봄이라면 고이 보내 드리는 것이 좋다. 떠나가는 봄에 정중하게 송시(送詩)까지 써서 드린다면 가는 봄도, 보내는 사람도 아쉬움이 훨씬 덜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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