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
잔인한 4월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4.04.24 19: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지난주 일요일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역사적인 사실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교회에서는 축일로 정해진 이 날에 부활의 축하인사를 나누고 함께 기뻐하는 날이다. 그러나 올해의 부활절엔 그 기쁨 대신에 ‘세월호’에 희생을 당한 승선자들의 구사일생을 간절히 기원하는 우울한 미사를 드렸다.

미사 시작 전부터 신부님의 음성은 착잡하셨고 부활 전야 미사에 참여한 신자들의 표정 역시 침울해 보였다. 사랑을 가장 우선으로 가르치시는 예수님이시니 당신의 부활을 기뻐하기만 할 수 없는 우리들의 마음을 이해하셨으리라 믿는다. 너무도 엄청난 사건이기에 국민 모두가 내 형제·자매, 자식을 잃은 것처럼 큰 슬픔에 잠겨 있으리라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나는 사고가 난 그날부터 텔레비전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행여 외출을 할 때에도 휴대전화를 켜고 구조 상황을 들여다보았지만, 혹시나 하는 생존자의 소식은 볼 수가 없어 가슴이 탔다.

희생자들이 어둡고 차가운 바다 속에서 탈출구를 찾느라 얼마나 애를 썼으며, 차오르는 물을 이겨 내느라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하면 절로 눈물이 난다. 또한 자식의 생사를 몰라 애태우는 부모의 심정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도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먼저 탈출한 선장과 승무원에 대한 비난의 여론은 아직도 실종자들의 구조가 다 이루어지지 못하여 안타까운 마음인지라 더욱 강해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사고를 낸 선장과 승무원들이 구명조끼나 구명튜브를 이용하여 승선자들을 탈출시킬 생각조차 없이 자신들만 비밀통로로 도망쳐 나와 구명의 기회를 놓쳐 더욱 많은 희생자가 나왔으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로부터 무책임하다는 비난이 쏟아질 만큼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비난을 받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선장과 자신을 던져 사랑하는 제자들 대신에 먼저 간 희생정신이 강한 스승과의 대조는 극과 극을 이룬다.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전력을 다해 학생들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여승무원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사랑하는 제자를 구하느라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은 선생님들, 그리고 사랑하는 동료와 제자들을 다 구하지 못하고 살아남은 데 대한 죄스러움으로 고통스러워하다 자살을 택한 교감선생님의 행동은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과연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를 했을까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선장과 같은 행동에 ‘저는 아니지요’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자신은 없지만, 자신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해 죽어가는 많은 이들을 외면하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답을 할 수는 있었다.

또한 목숨을 던져 제자를 구한 선생님들처럼 존경받는 교사였느냐는 자신을 향한 질문에는 그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평생직장이던 교직에 있을 때 제자 사랑에 인색했던 후회도 밀려왔다.

천안함 사태의 슬픔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다 피지도 못한 꽃송이를 수백 명이나 또 바다에 밀어 넣은 잔인한 4월이 어서 지나고 하루빨리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며 친구와 함께 살아남지 못함에 심한 상처로 괴로워하는 생존자들이 안정을 되찾고 유족들이 마음을 추스르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나로 인해 다른 이가 아픔을 겪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어진 책임에는 최선을 다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