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계수나무
봄 계수나무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4.04.21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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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봄이 무르익어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은 세상의 어떤 화가도 흉내 내지 못할 한 폭의 그림이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의 진수를 선사하는 봄꽃이지만, 막상 지고 나면 그 허탈감 또한 만만치 않다. 그래서 그리 쉽게 질 거면 차라리 피지나 말라고 푸념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그런데 이러한 봄꽃에 대한 푸념은 사람들의 몫만은 아닌 듯하다. 봄에 꽃을 피우지 못한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은 계수나무는 봄꽃에 대해, 사람들과는 다른 푸념을 재치 있게 늘어놓았다. 당(唐)의 시인 왕유(王維)의 시이다.

◈ 춘계문답(春桂問答 2)

問春桂(문춘계) : 봄 계수나무에게 묻기를

桃李正芳華(도리정방화) : 복숭아와 오얏나무 이제 막 향기로운 꽃 피워

年光隨處滿(연광수처만) : 봄꽃이 곳곳에 가득하거늘

何事獨無花(하사독무화) : 무슨 일로 홀로 꽃이 없소?

春桂答(춘계답) : 봄 계수나무 대답하기를

春華詎能久(춘화거능구) : 봄꽃이 어찌 오래갈 수 있으리

風霜搖落時(풍상요락시) : 바람과 서리에 나뭇잎 지고 나면

獨秀君知不(독수군지불) : 나 혼자 빼어난 줄 그대는 아는지 모르지

 

※ 시는 누군가 계수나무에게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같은 나무인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는 향기로운 꽃들이 한창이다. 그리고 이 나무들이 아니더라도 온갖 초목이 한 해 한 번 발하는 빛(年光), 즉 꽃으로 가는 곳마다 가득하다. 그런데 유독 계수나무만은 꽃을 피우지 않고 있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누군가 이렇게 물을 때는 그 의도가 있을 것이다. 초목에 딱히 서열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굳이 서열을 두자면, 계수나무는 좋은 나무의 대표격인 복숭아나무나 오얏나무와 동급으로 보고 질문을 던진 것이다. 같은 서열의 나무들뿐만이 아니라, 자기보다 훨씬 낮은 서열의 초목들조차도 모두 꽃을 피웠는데, 계수나무 혼자만 꽃을 못 피웠으니, 그것이 나무냐는 것이다. 질문 형식을 빌어 비아냥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 계수나무는 정색을 하고 반격을 한다.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으로 응한 것이다. 이에 의하면, 계수나무가 봄에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은 절대 못나서가 아니다. 다 계산이 있다는 것이다. 무언고 하니, 봄에 꽃을 피우면 꽃이 피어 있는 기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죄다 꽃을 피우고 있을 때, 따라서 꽃을 피워봐야 남의 이목을 끌지도 못하고 별 볼 일 없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이다. 바람과 서리에 꽃은 물론이고 나뭇잎까지 다 지고 없을 때야말로 꽃을 피우기 위한 적기(適期)이다. 왜냐하면, 주변이 온통 삭막한 가운데 혼자만 꽃을 피우고 있는 기분은,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하기 때문이다.

봄에는 온갖 초목들이 꽃을 피워 온 세상을 수놓는다.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봄꽃은 오래가지 않아 떨어지고 만다. 아름다웠던 만큼 그 상실감 또한 만만치 않다. 그래서 차라리 봄이 아니더라도 오래 피어 있는 꽃을 바라는 마음이 생겨나기도 하는 게 아닐까? 봄의 꽃축제에 초대 받지 못한, 다른 철의 꽃들에게, 봄꽃들은 받지 못한 많은 시선을 한몸에 받는 것은 커다란 위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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