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
가시
  • 안희자 <수필가>
  • 승인 2014.04.21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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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안희자 <수필가>

모자를 눌러썼다. 주말 아침, 남편이 바람을 쐬러 가자기에 함께 나섰다. 모처럼 한적한 시골 마을 초평저수지를 찾았다. 바람이 상깃하다. 한가로이 낚시를 즐기고 있는 강태공들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인다.

점심으로 붕어찜을 먹었다. 붕어찜은 이곳의 별미인데 언젠가 맛을 본 이후로 즐겨 찾는 단골메뉴가 되었다. 시래기를 깔고 큰 붕어를 얹어 갖은 양념하여 지져낸 붕어찜은 맛이 담백하고 구수하다. 감칠맛에 이끌려 몇 수저 입안에 급하게 넣었더니 붕어가시 하나가 목에 걸렸다. 붕어가시는 뼈가 억세어 침을 삼킬 때마다 쿡쿡 찌른다. 상추쌈을 싸먹어도 가시는 그대로다. 차라리 뱉어버릴 걸, 성급함이 화를 부른 것이다. 기왕 온 김에 한 바퀴 더 둘러보자는 남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풍경은 뒷전이고 오직 목의 가시에만 신경이 쓰인다.

거울 앞에서 입 안을 살펴보고 억지로 토해 봐도 속만 울렁거리고 가시는 보이질 않는다. 가시가 송곳처럼 찌르며 목의 통증만 더 심해질 뿐이다.

참다못해 동네 병원에 갔다. 의사선생님은 마취를 시킨 후 내시경을 목에 넣어 가시를 찾는다. 그러나 헛구역질만 나오니 이를 어쩌랴. 의사는 다소 격앙된 말투로 지금 빼지 못하면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며 입을 더 크게 벌리란다. 긴장한 나는 더 이상 입을 크게 벌릴 수도, 견딜 수도 없다. 급기야 목젖이 닫히고 말았다.

결국 큰 병원으로 갔다. 의사와 마주하니 불안하여 심장이 멈출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의외로 젊은 의사는 아기 다루듯이 나를 살살 달랜다. 편안하게 심호흡하며 같이 노력해 보잖다. 의사는 내시경을 목 깊숙이 밀어 넣는 듯싶더니 금세 가시를 꺼내 내 손바닥에 올려 놓는다. 순간, 목이 뻥 뚫리는 기분이랄까. 날숨을 길게 쉬었다. 그 의사가 어찌나 고마운지 나는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는지 모른다.

그 가시를 보자 문득 위층에 살고 있는 그녀가 떠오른다. 그녀는 두어 달 전, 이사를 온 젊은 주부다. 엊그제는 그가 버린 물이 내 집 베란다로 쏟아져 건조대에 널어놓은 빨래가 다 젖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늦은 밤의 세탁기 돌리는 소리, 아이들이 뛰는 소리는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요즘 뉴스에서 층간소음으로 인한 사건을 접할 때면 남의 일이라 여겼는데, 같은 일이 반복되다 보니 그녀의 행동이 거슬려 짜증이 났다. 나도 손자를 키우는 입장에서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는데….

오늘은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타이르며 부탁을 했지만, 그는 간섭하지 말라며 말꼬리를 잘라버린다. 오히려 내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 없을 지경이다. 목에 걸린 붕어가시처럼 그녀는 내 눈엣가시가 아닌가. 가시를 빼고 싶은데 어찌해야 좋을지 난감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싸울 수만은 없는 것, 이제 가시 같은 그녀를 어떻게 부드럽게 만들 수는 없을까.

그럼 나도 큰 병원에서 가시를 빼낼 때처럼 그녀를 살살 달래 볼까 싶다. 생각해보니 그녀 덕분에 그 집 아이와 우리 손자가 놀이터의 또래 친구가 되었고 간식도 챙겨와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었다. 그도 아파트 안에선 한 식구나 다름없는 것을, 너무 옹졸하게 군 게 아닐까.

가시를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속에 박힌 가시도 내시경으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엣가시를 미리 제거한다면 사람과의 관계도 훨씬 부드러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는 가시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급한 성미와 행동에 일침을 놓은 하루였다.

오늘은 그녀를 불러 내 마음을 전해야겠다. 새콤한 과일이랑 따끈한 커피도 끓여내야지. 함께 나누며 미워했던 마음을 날려 버리리라. 내 마음의 가시부터 빼내는 것이 세상을 부드럽게 사는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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