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실 사랑
그럭실 사랑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4.04.1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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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봄은 달력으로 오는 게 아니라 흙으로부터 온다고 했던가, 보는 것만으로도 봄 되는 자그만 풀꽃들이 눈을 환하게 한다.

나는 지난해 봄, 그럭실과 접견한 다음날부터 매일 만나러 갔다. 어떤 날은 두 번씩 갔다. 집에 있으면 거기서 누가 부르기라도 하는 듯 또 달려갔다.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으므로 어떤 이는 기름 값이 아깝다고 하지만 나는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사랑에 눈이 먼 여자가 되었다.

질마재를 넘어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그럭실이 있다. 나는 그럭실과 처음 만나던 날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럭실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전에 느껴 보지 못한 신기한 기운을 느꼈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첫 느낌이 좋은 것이 있고, 뭔지 모르게 불편한 느낌이 있는 것이 있다. 그럭실을 보는 순간 마음에 쏙 들었다. 탐이 났다. 소유하고 싶었다. 아마 이런 남자를 만났다면 나는 지금당장이라도 지금까지 내가 지켜온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와 사랑에 빠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도 아닌 콘테이너가 놓여있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쓰고, 밭 모양새도 네모반듯한 것도 아니고 길게 못생겼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싫지가 않았다. 깨끗하고 달달한 바람이 내 신경을 마비시켰나보다. 오래전부터 살아온 것처럼 편안했다.

밭에는 봄이라고 파릇파릇 올라오는 것은 쑥이었다. 그야말로 쑥대밭이었다. 드문드문 노란민들레꽃이 웃고 있고 봄 맏이 꽃이 밭둑에서 하얗게 인사를 건넸다. 고것들이 얼마나 예쁘던지 “그래 네가 여기 있어 발걸음이 이리로 왔구나.” 반갑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렇게 지난해 봄부터 그럭실과 사랑을 시작했다.

처음 농사를 지을 땐 물과 햇볕만으로 작물을 키워 내리라 결심했다. 농약을 치지 않고 비료도 주지 않았다. 올해도 그렇게 해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동네 이장님께서 두엄 좀 뿌리고 밭을 한 번갈아 엎으란다. 이장님말씀“밭도 영양을 줘야 뭘 키워내지. 아무것도 주지 않고 그냥 빼먹기만 할 거냐고. 땅도 힘이 있어야지” 하신다. 처음엔 내 고집대로 그냥 해 보려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도 그럴 듯하다. 농약을 하지 않지만 퇴비는 줘야 할 것 같다. 흙을 만져 보았더니 손으로 전해오는 질감은 진이 다 빠진 것 같이 푸석하다. 알곡은 내게 다 내주고 말없이 겨울을 견뎌낸 흙, 자식들을 키워내신 이 땅의 부모님을 생각하게 했다.

이장님 말씀대로 퇴비를 내고 밭을 갈았다. 사람도 자기 몸을 돌보지 않으면 몸에 병이 온다. 영양보충도 해 줘야 하고 휴식도 취해야 건강을 유지 할 수 있듯 말이다. 내 이기적인 마음으로 알뜰히 빼먹을 생각만 했던 것이다. 내가 악덕업주가 된 것처럼 부끄러웠다.

밭에 두엄을 내고 갈아 놓으니 부드럽고 촉촉하게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농사에 서툰, 아니 서툰은 너무 과분한 표현이다. 문외한이 농사에 대해 아는 체를 했으니 평생농사만 지은 이장님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사랑한다는 건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중하게 보듬을 줄 아는 것이 사랑인 것이다. 나는 그럭실의 살을 매일 만지며 살 것이다. 사랑하면 보고 싶고 함께 있고 싶다. 농사는 단순 노동이므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했던 내 과오를 인정하게 되었다. 가장 과학적이고 치밀해야 하는 것이 흙과 사랑하는 일이다. 물과 햇볕을 필요로 할 때 주지 않으면 사랑하는 마음이 돌아 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럭실 사랑에 빠져 헤어나지 못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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