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꽃
술과 꽃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4.04.14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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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봄의 주인공은 뭐니뭐니 해도 꽃이다. 들이고 산이고 봄은 온통 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봄꽃들을 보면서 무척 아름답다고 여긴다. 아름다움이란 사람들이 느끼는 주관적 느낌이라 할 수 있지만, 그 느낌의 메카니즘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도대체 봄꽃의 무엇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일까? 생김새, 빛깔, 냄새가 종합적으로 어우러지고, 여기에 봄이라는 기후적, 문화적 특성이 가미되어서 봄꽃의 아름다움은 형성된다고 말한다면, 틀린 것은 아니겠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점이 있다. 아마도 이유는 자연스러움이 빠져서일 것이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봄꽃만큼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까 바로 이 점이 봄꽃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진짜 이유일 지도 모른다. 당(唐)의 시인 이백(李白)은 봄날 산 속에 머물면서 만난 꽃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을까

◈ 산속에서 은자와 대작하다(山中與幽人對酌)

兩人對酌山花開(양인대작산화개) : 두 사람 마주하여 술을 주고받으니 산꽃은 피고

一杯一杯復一杯(일배일배부일배) : 한 잔 또 한 잔 그리고 또 한 잔

我醉欲眠君且去(아취욕면군차거) : 내가 취하여 잠이 오니 그대는 돌아가

明日有意抱琴來(명일유의포금래) : 내일 아침 생각나면 거문고 안고 오시게

 

※ 시인과 유인(幽人),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별다른 인사도 나누지 않고, 그저 술잔을 마주하고 앉아 술을 나눌 뿐이다. 은거에 대한 경외나 위로 같은 것도 전혀 없다. 여기서 술은 두 사람이 모두 번다한 속세의 물정을 버리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존재이다. 이들에게는 속세의 어떠한 일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오직 자연의 섭리에 따라 때가 되자, 피어난 산꽃이 이들과 함께 할 뿐이다. 여기서 꽃은 두 사람의 술자리를 꾸미는 장식물이거나 두 사람이 술을 마시면서 바라보는 구경거리가 아니다. 시인은 이 꽃들의 아름다움에 도취되거나 감탄하지도 않는다. 시인과 친구 그리고 산꽃은 주종 관계가 아니고, 모두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무차별적이다.

이 시에서 꽃이 아름다운 것은 결코 그 빛깔이나 생김새, 향기 때문이 아니다. 오로지 자연의 섭리에 대한 순응이 산꽃이 아름다운 유일한 이유이다. 이는 두 친구가 아무 말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술잔을 주고받음으로써 탈속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화려한 외양을 자랑하는 봄꽃은 기실 아름다움을 의식하지는 않는다. 다만 자연의 섭리에 따라 피고 질 뿐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사람들의 자의적 느낌에 불과하다.

시인과 유인(幽人)이 마시는 술 또한 사람을 즐겁게 하거나 근심을 잊게 하지 않는다. 다만, 세속의 번다한 일들로부터 멀어진 채, 그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자 하는 상징적 행위일 뿐이다. 시인은 술을 마심에도 어떠한 세속적 욕심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취하면 자고 또 생각이 나면 마실 뿐인 것이다. 유인(幽人)이 들고 다니는 금(琴)은 보통 줄이 없어 실제로는 연주가 불가능하므로, 이 또한 술과 마찬가지로 탈속의 상징일 뿐이다.

봄에 피는 산꽃은 아름답기 그지없어서 사람들은 그로부터 즐거움과 위안을 얻곤 하지만, 이는 세속적인 탐미(耽美)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산꽃에는 이러한 세속적 아름다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산꽃에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탈속의 아름다움이 들어있음을 볼 줄 알아야 산꽃을 제대로 즐기는 것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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