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로 온 그녀
기차로 온 그녀
  •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4.04.1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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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그녀가 온다고 한다. 저녁 여덟시 팔분에 오근장역에 도착한단다. 벚꽃이 가득 핀 사월을 달려 그녀를 맞으러 갔다. 그녀를 기다리다 차창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어느새 하늘은 온몸에 달과 별을 달고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순간 톡하고 카톡이 반짝한다. 그녀가 도착했다는 활자가 핸드폰 화면으로 톡톡 튀어오른다. 역쪽에서 뽀얀 그녀가 달빛처럼 환한 미소를 머금고 걸어오고 있다. 두달만이다. 하루도 안거르고 통화를 해서 마치 어제 본 것 같다. 우아한 머리, 날씬한 몸매, 상큼한 다리, 내 동공이 빠르게 위에서 아래로 그녀를 훑다가 신발에서 멈추었다. 눈물방울 같은 큐빅이 바디라인에 달려 딸랑거리고 있는 사랑스러운 신발! ‘어라~ 내 신발과 똑같네!’ 난 청주에 살고 그녀는 제천에 있었는데, 약속한 듯 같은 신발을 샀다. 그녀와 나는 오년 전 일년을 같이 근무했었다. 낯선 제천에서 갈대밭에 버려진 작은 새처럼 서걱대고 있을 때 그녀는 내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 그후 난 청주로 오고 그녀는 여전히 제천을 지키고 있지만 우린 틈나는대로 둘만의 여행을 다녔다.

집에 도착하자 그녀가 묻는다. “나 뭐입어?” 수면잠옷을 내주었다. 그녀도 나도 추위를 많이 타서 사월에도 두툼한 수면잠옷에 수면양말을 신어야 한다. “나 씻는다.” 화장실로 들어간 그녀 소리만 내게 던진다. “클렌징크림 어디 있어?” 나도 화장실 쪽을 보며 큰소리로 답한다. “없는데.” “폼클렌징은?” “그런거 안키우는데.” “그럼 뭐로 씻어?” “세수 비누!” 씻고 나온 그녀가 이번엔 바디로션을 찾는다. 그런거 없다고 하자 이번엔 아이크림을 찾는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그런거 안쓴다고 대답한다. “머리는 뭐 발라?” “언니 그냥 거기 있는 영양크림 걍 발라. 뭐그리 복잡하게 살어 바디크림 아이크림 헤어로션 영양크림 왜 그렇게 세분을 해. 그냥 난 영양크림 바르고 남으면 그거로 머리도 바르는데.”

어여쁜 그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보낸다. “헐~ 용하다. 그러고도 그 젊음을 유지한다는게. 지금부터 관리해야해!” 그럴 생각이라고 건성으로 답하고 이불을 뒤집어쓴다. 침대위로 올라온 그녀와 나는 도란도란 새벽이 다가오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침 햇살이 창문을 두드린다. 눈을 열어 옆을 본다. 그녀가 다리를 치켜들고 스트레칭을 한다. 목운동을 하고 팔운동을 하고 저번에 보지 못한 새로운 스트레칭도 한다. 김연아 엉덩이 만들기란다. 다리를 이쪽저쪽으로 스케이팅하듯 움직이는 폼이 제법 운동이 될 듯 하다. 스트레칭을 마친 그녀 물 한잔을 들이키더니 침대 밖으로 나와 또 온몸을 푼다. 그렇게 삼십여분 몸풀기를 하는 그녀를 보고 한마디 던진다. “언니 너무 몸을 생각하는 거 아냐? 그렇게 매일 해? 힘들겠다.” 그녀 왈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 아픔이 사람을 얼마나 외롭고 고독하고 힘들게 하는지. 그 아픈 시간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어, 혼자 철저하게 견뎌내야하는 거야. 벼랑 끝에 서있는 것 같은 순간순간은 가족도 공유할 수 없는 고통인거야. 난 아파봐서 알아. 그런 시간들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 너도 스스로 챙겨. 얼굴도 몸도 마음도 한방에 훅간다.”

그녀를 보내고 텅빈 대합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생각한다. ‘아프지 말고 살자.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자. 오늘부터 나도 관리에 들어갈까나~’ 그녀의 스트레칭을 하던 모습이, 건강식품을 챙겨먹던 모습이, 고운 피부에 관리하던 모습이 설핏설핏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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