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이야기
풀꽃 이야기
  •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4.04.0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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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노릇노릇 떨어지는 봄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집을 나섰다. 바람도 살랑살랑 따라오며 참 행복한 아침이라고 소근대는 것만 같았다. 차키를 꼽고 지난 시절 뚜벅뚜벅 걸어 다녔던 그 길을 달렸다. 연초록의 측백나무가 가지런한 몸매를 뽐내며 여리게 웃고 있는 순회도로에 들어섰다. 조금 더 진입하자 어느새 벚꽃이 애달프도록 아름다운 꽃잎을 터뜨리고 있다. 몇 발자국 거리엔 하얀 목련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단아하게 서있다.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다. 목련꽃 아래 잠시 멈추어 찰칵 찰칵 핸드폰 렌즈에 계절을 담았다.

문득 고개를 드니 햇살만큼이나 깨끗한 하늘이 구름을 밀어내고 있다. 키를 낮춰 무심히 땅을 내려다 보았다. 작고 예쁜 풀꽃이 지천이다. 보라색 꽃잎위로 바람을 얹고 있는 제비꽃 옆에 봄까치꽃이 하늘색 얼굴로 자기도 봐 달라는 듯 웃고 있다. 그 옆에는 노란 꽃다지가 잔물결을 일으키고, 하얀 별 모양으로 반짝이는 봄맞이꽃은 작은 키로 봄볕을 한껏 누리고 있다. 노랗게 피어있는 민들레도 고개숙인 할미꽃도 하얀 별꽃도 시야를 채운다. 명자나무 꽃은 어느새 터질 듯 팽팽한 봉오리에 붉은 탄약을 가득 장전하고 있다. 

대학 시절 이 길을 친구들과 함께 깔깔거리며 걷곤 했었다. 그때는 보이지 않던 작은 꽃들이 세월이 흐른 지금에야 눈에 들어 온다. 젊음이 가지지 못하는 여유를 젊음이 사라진 뒤에 허락받게 되었나 보다. 멀리 시선을 던져 본다. 우암산 그늘 속에 진달래가 꽃잎을 벌리고 웃고 있다. 생강나무는 노란 꽃잎을 휘장처럼 온몸에 두르고 봄이 왔음을 알리고, 매화도 하얀 꽃잎을 드러내며 겨울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하려 막 기지개를 켜고 있다. 봄꽃들의 향연에 눈이 호사를 누렸다.  

그렇게 한참을 봄꽃을 바라보다 다시 차에 오른다. 느리게 느리게 뒤로 밀려가는 꽃잎과 나무와 사람들을 백미러로 보며 26년을 되짚어 학교로 들어갔다. 학교로 들어서는 순간 지난 시간들이 머릿속에 맴돌며 가슴이 쿵쾅거린다. 여전히 인문대 건물이 그날처럼 우뚝 서있다. 막걸리에 새우깡을 먹으며 빙 둘러 앉아 노래 부르던 조그만 연못가에는 여전히 산딸나무가 그날의 일을 알고 있다는 듯 묵묵히 서있다. 4년간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인문대 건물을 돌아 새로 지은 듯한 평생교육원 건물로 향했다.  

설레었다. 그동안 듣고 싶었던, 배우고 싶었던 수업이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접어 두었던, 늘 아련한 미련으로 남아있는 수업이다. 2층으로 난 계단을 또각또각 밟으며 강의실을 향했다. 내 푸르렀던 시절 강의를 해 주시던 교수님이 머리위로 내려앉은 은빛 세월을 이고 은은하게 강의를 하고 계셨다. 해마다 피는 꽃처럼 교수님은 여전히 그 자리에 계셨다. 마음이 평온해 졌다.

‘문학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현상을 개인적이고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던가. 세상이라는 보편적인 공간과 봄이라는 일반적인 시간 속에서 인생의 그럴 듯한 명함을 한 두장씩 가진 사람들이 오전 10시라는 구체적인 시간 속에 개인적인 갈증을 갖고 같은 호흡을 하며 앉아 있다. 다양한 모습과 다양한 색깔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 피는 꽃들처럼 그들도 다양한 언어로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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