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사(春思)
춘사(春思)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4.03.3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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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세상에 사람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것 중에 봄만한 것이 또 있을까? 사연이야 제각각일 수 있지만 기다리는 마음만은 다를 바가 없다. 그런만큼 사연도 많고 걱정도 많은 것이 봄이다.

기다리던 봄이 왔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봄 자체야 싫을 리 없지만 문제는 춘사(春思)이다. 그 대상이 고향이건 친구건 님이건간에 춘사(春思)는 화창한 봄날이면 여지없이 도지곤 하는 것이다. 당(唐)의 시인 가지(賈至)에게 춘사(春思)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 춘사(春思)

草色靑靑柳色黃(초색청청유색황) : 풀빛 파랗고 버들잎 노랗고

桃花歷亂李花香(도화역란이화향) : 복숭아꽃 어지러이 피고 오얏꽃 향기로워라

東風不爲吹愁去(동풍불위취수거) : 봄바람은 시름을 불어 날리지 못하고

春日偏能惹恨長(춘일편능야한장) : 봄볕은 오로지 한이 길어지도록 할 수만 있는지



※ 세상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봄은 그야말로 빛의 계절이지만 거기에도 그림자는 분명히 있다. 도리어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 풀 빛깔이 파랗고 버들 빛이 노란 것은 분명 봄이 사람들에게 쪼여주는 빛이다. 복숭아꽃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핀 것도, 오얏꽃이 은은하게 향기를 발하는 것도 봄이 내려주는 빛이다.

이러한 봄의 빛은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화사하고 상큼하다. 그러면 이 빛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극명하게 갈릴 수 있다. 가족간에, 친구간에, 남녀간에 헤어짐이 없다면 봄의 빛은 그대로 화사하고 상큼할 것이다. 그러나 헤어짐과 떠남의 아픔이 있는 사람들에게 봄은 빛보다는 그림자일 수밖에 없고 시인은 이 그림자를 일러 춘사(春思)라고 칭한 것이리라.

봄이 되자 바람은 동쪽에서 불어온다. 바람의 속성은 묵은 것을 날려 보내고 새로운 것을 그 자리에 가져다 놓는 것이다. 겨울의 묵은 것을 날려 보내고 봄의 새로운 풍광을 날라 오는 것이 바로 봄바람인 것이다. 그러나 유독 봄바람이 불어도 날려 보낼 수 없는 게 있으니 마음속의 근심(愁)이 바로 그것이다.

근심(愁)이라고 이름 붙여진 춘사(春思)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봄바람에 날아가기는커녕 더 도지기만 하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근심의 내용은 고향 생각이거나 님 그리움이리라. 봄바람에도 날아가지 않고 끄떡없이 버티어 낸 근심에게 이번에는 봄볕이 나섰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만물을 소생시키는 힘이 있었기에 근심으로 엉킨 마음을 풀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던 봄볕마저도 깊고도 깊은 춘사(春思) 앞에서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었다. 도리어 봄볕은 풀리지 않는 춘사(春思)로 인해 생긴 마음속의 멍울인 한(恨)을 더욱 자라나도록 할 뿐이었다. 마음속의 한(恨)을 들판의 초목으로 착각하여 자라게 하였다는 시인의 발상은 참으로 기발하다.

봄의 빛은 화사하고 봄의 냄새는 상큼하다. 봄의 볕은 따사롭고 봄의 소리는 낭랑하다. 모든 감각이 밝음 쪽으로 열려있지만 그럴수록 마음 한켠에 짙은 어둠이 깔려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수시로 교차하는 인생살이에서 빛과 그림자는 어쩔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이다. 밝고 고운 빛만을 탐할 일은 아니다. 어둡고 짙은 그림자를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림자는 빛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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