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다
흔들리다
  • 안희자 <수필가>
  • 승인 2014.03.3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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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안희자 <수필가>

바람이 순하다. 따스해진 봄 햇살에 세상은 연둣빛으로 물들고 있다. 나는 지금 눈 부신 햇살을 받으며 무심천변을 걷고 있다. 봄볕에 얼굴을 내민 민들레가 노랗다. 언 땅을 비집고 나오느라 얼마나 힘겨웠을까.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는다. 이 작고 여린 것들이 어찌하여 가슴을 흔드는가. 무심천에는 봄맞이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운동을 위해서라지만 봄 햇살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더 크지 싶다.

나는 여린 꽃들을 보면서 객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작은 딸아이를 생각했다. 딸아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오로지 꿈꾸었던 방송 일을 선택하였다. 그때 나는 직업에 대한 호감정(好感情)은 컸으나 내심 불안했었다. 남자도 버텨내기 힘든 직업인데 어찌 그 일을 여자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설득하고 다독였다. 그러나 정작 아이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겁 없이 세상 속으로 뛰어든 아이를 지켜보면서 늘 안쓰러웠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의 인생이니 알아서 한단다. 나는 아이에게 네가 원하는 길이니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라며 응원해 주었다. 하긴 누구나 가고 싶은 인생길이 있고, 하고 싶은 일도 제각기 다를 것이다.

딸아이도 살아가면서 많이 흔들렸지 싶다. 사람에게 부딪치고, 일 때문에 고민하며 잠 못 든 적도 있으리라. 어쩌다 집에 들러도 힘들다는 내색 하지 않지만 속 타는 아이 마음 내가 왜 모르겠는가. 꽃다운 나이에 겪어야 하는 질풍노도의 시간들, 꿈과 욕망이 큰 만큼 감내해야만 하는 고통도 컸을 게다. 때론 포기하고 싶은 날도 있었을 터, 모진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같았으리. 흔들리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으리라.

흔들린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소생하려는 자신의 의지이기도 하다. 시련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대나무처럼 곧게 한 길만 걸어가는 딸아이가 대견하다. 아마도 가장자리에서 중심에 서기까지 만 번 아니, 수만 번은 흔들렸을 것이다.

때가 되면 반드시 봄이 오고 꽃이 피는 것처럼 이 세상 모든 것은 그렇게 흔들리며 오고 가는 것이리.

육십을 넘기고 건강한 몸도 지니지 못한, 아무런 꽃도 피울 수 없는 나도 봄바람에 흔들려 무심천으로 나왔다.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나도 살아가면서 많이 흔들렸다. 살면서 나에게 힘든 고비가 여러 번 있었지만 가장 많이 흔들렸던 적은 건강을 잃었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심장이 멈출 것 같은 호흡곤란으로 인해 층계는 물론 천천히 걷는 것조차도 어려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공원에 나와 산책하며 운동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부러운 마음에 잠깐이지만 흔들려 다른 생각해 본 적도 있다. 나를 붙잡아 준 것은 가족이다. 내 몸 하나도 건사하지 못해 힘겨웠던 그때를 생각하면 식구들에게 걸림돌이 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뿐이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무심천변을 걷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 나에겐 너무도 소중하다. 여유롭게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오늘 살아 숨 쉬는 것, 남편과 함께 맛난 음식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이 나이에 이르러서는 가벼운 봄바람에도 이렇게 가슴이 흔들리는데 딸아이는 어떻게 감당하며 견디었을까.

길섶에 주저앉아 민들레를 바라본다. 눈부시게 환하다. 딸아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4월의 봄이 그렇게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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