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늄
제라늄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4.03.30 21: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제라늄을 키우기 전까지는 겨울나기가 안되는 줄 알았다.

지난해 봄 붉은 꽃잎에 홀려서 한 포기 심은 제라늄을 가꾸면서 정성만 기울인다면 겨울나기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제라늄은 봄부터 여름과 가으내 꽃을 피웠다. 겨울이 되어서는 꽃잎이며 줄기가 모두 시원찮아졌다.

아무래도 영양이 다 빠져나간 듯싶었다. 다시 새 거름을 주고 물과 온도를 맞추어 주었더니 놀랍게도 잎에 윤기가 흐르면서 다시 생기가 났다. 근래에는 진초록 잎사귀를 뽐내더니 기어코 꽃대를 올려 꽃망울을 터트렸다. 아주 요염한 자태다.  

어떤 이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자꾸만 제라늄 생각이 났다. 그 사람은 자녀의 공부 걱정만 했다. 아이가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친구들과는 잘 지내는지, 무슨 고민은 없는지는 관심이 덜했다. 그저 착한 우리 아이가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학원으로 과외로 밤늦도록 공부를 시킨다. 그래도 성적이 안 오르면 학원 탓에 아이 탓을 한다. 공부도 재능이다. 남보다 집중력도 뛰어나야 하고 기억력 이해력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신체적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공부에 적합한 뇌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공부도 잘하는 것 같다. 공부에 재능이 모자라면 분명히 다른 한 두 가지 잘하는 것이 있다. 머리가 특별나게 좋지 않아도 적성에 맞는 분야는 집중을 할 수 있는 아이인데 제발 옆 짝꿍, 옆집 아이와 비교하여 다그치지 말고 아이의 적성을 찾아 지지해주고 아이를 믿고 지켜봐 주면 좋으련만. 

제라늄 꽃송이를 하루에 몇 번씩 들여다본다. 여러 식물을 키워보곤 하지만 그중 키우기 쉬운 꽃인 것 같다. 예전에는 붉은 꽃잎이 촌스럽고 거북스런 향 때문에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지금 이렇게 반할 줄이야. 특유의 향이 강해서 키우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향으로인해 벌레도 끼지 않게 자신을 방어하는 강점이 있다. 그래서 항상 깨끗하고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할머니는 제라늄을 시절꽃이라고 불렀다. 시절도 없이 피고 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적당한 관심만 주면 화려한 꽃을 일년 내내 볼 수 있는 꽃이다. 정열적인 붉은 꽃을 상상하면서 엄마의 욕심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가 자꾸 눈에 밟힌다. 

아이들은 식물 이름을 거의 모른다. 시골이라 눈에 보이는 것이 자연인데도 자연을 눈여겨보지 않기 때문에 자연과 멀어진 삶을 살고 있다. 공부, 정서적, 신체적인 건강, 모두를 원하는 엄마와 아이들에게 제라늄을 전하고 싶다. 어른들은 그저 살아갈 물과 흙을 제공해 주고 스스로 뿌리를 내릴 때까지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 줄줄 알고 어디가 아픈지, 무엇을 원하는지 적당한 관심과 따스한 눈길로 지켜봐 주면 될 것 같은데. 제라늄의 가지를 잘라 물컵에 꽂아둬야겠다. 뿌리내리는 모습과 잎을 내고 꽃대를 올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연과 교감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