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
안부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14.03.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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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일 년 넘게 캄캄 무소식이란다. 몇 번 전화를 해 봤는데 받지 않는 것을 보면 죽지 않았나 싶단다. 애들은 왕래가 없었으니 연락처도 몰랐을 것이라며 애를 태우신다. 직접 찾아가 확인을 해야 한다면서 두어 달 전부터 벼르던 외출이다. 하나뿐인 외사촌 동생의 소식이 몹시 궁금하신 아버지를 따라 어머니와 작은아버지께서 동행하셨다.

내판으로 가는 길은 봄볕이 내려앉아 반짝거린다. 누운 풀들의 떡잎을 비집고 엷은 초록 새싹들이 생명의 소식을 알리고 있다. 그곳으로 향하는 목적은 무거웠으나 들판의 풍경이 팔순을 훌쩍 넘기신 부모님과 팔순을 향하는 작은아버지의 쇠잔해지는 기력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는가 보다. 초행길인 내게 앞자리에 앉은 작은아버지와 뒷자리에 앉으신 아버지가 동시에 방향을 가르쳐 주시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다. 두 분이 어릴 적부터 드나들던 외가동네를 향하는 길이니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 설레셨는가 보다.

집 앞에 차를 세우자 아버지가 먼저 하신 일은 대문 옆에 걸려 있는 우체통을 확인하는 일이다. 거기에는 진외당숙의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현관문을 열고 기척을 해봤으나 집안에는 아무도 없다. 동네를 서성이다 어느 청년을 만나 진외당숙의 안부를 물었다. 살아계신단다. 만약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면 산소라도 가봐야 한다며 나선 길인데 아버지의 긴장했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스민다. 진외당숙은 멀리 출타중이라 내일이나 돌아온다고 한다.

아버지는 청각이 좋지 않아 보청기를 사용하신다. 대화를 할 때면 조금 큰 소리로 해야 되고 시끄러운 곳에서는 오히려 더 안 들린다고 하신다. 나는 아버지께 안부 전화를 드릴 때 목소리의 톤을 조절하고 말을 정확하게 천천히 한다. 그래야 잘 들으신다. 아버지는 당신과 인연이 닿은 사람들에겐 언제나 진정한 마음으로 먼저 안부를 묻고 좋은 소식만 전하신다. 그게 당신 삶의 방식이다.

나는 오랫동안 소식 없는 친구의 안부가 궁금해 전화를 했을 때 받지 않으면 다시 전화를 하지 않는다. 부재중 전화가 확인될 텐데도 연락이 없으면 섭섭해지는 마음이 앞선다.

누군가와 소통해야 할 때조차 무슨 오기인지 고집을 부린다. 아무리 가까이 지냈던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먼저 소식을 전해 올 때를 기다리기만 한다. 상대방의 상황이 어떠한지, 잘 지내고 있는지 몹시 궁금하긴 해도 나서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일 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 기다리는 나만 서먹해지곤 한다. 아버지가 진외당숙의 안부를 걱정하는 마음은 윗사람보다 아랫사람이 먼저 찾아 와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버리신 겸손과 양보의 따뜻함인데 나는 고집 세고 마음 그릇이 작아서인지 인색하게 했다. 어쩌면 내 소식을 궁금해 하지 않는 이유가 혹여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열등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행복한 것은 그리운 곳과 보고 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다정하게 안부를 묻는다는 건 고향 같은 푸근함일 것이다. 누군가는 내가 해주는 안부의 말을 간절히 바랄지도 모른다. 소식을 기다리는 일이란 대체로 진을 빼는 일이지 않는가.

늦었지만 이제라도 가까운 이들에게 따뜻한 안부를 물어야겠다. 잘 지내느냐고, 별일 없느냐고, 나는 보고 싶은데 나 보고 싶지않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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