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진
오늘의 사진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4.03.24 19: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사진 속에 싱그러운 내음이 가득 차 있다. 봄을 비집고 돋아난 쑥 사진이 한 컷, 멀리 구름 떠가는 하늘이 한 컷, 잔잔한 물의 정거장 푸른 호수가 한 컷, 북실북실한 털 강아지 한 컷 총 4컷이다.

오늘 하루 찍은 사진들이다. 그 동안은 별반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 학기부터 ‘사진치료’ 과목을 수강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있다. 담당 교수님은 숙제로 일주일 동안 그 날 그 날의 기분을 사진에 담고 그 중 3컷을 골라 카톡으로 보내라고 하셨다. 일주일 후 그것으로 사진치료 수업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려나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벌써 설레는 마음을 들킨 기분이다. 오늘도 사진을 찍겠다는 생각에 내 기분이 어떤가를 헤아리게 되었고 무심히 지나쳐 온 사물도 오늘따라 세심히 바라보았다. 사진을 찍는 순간 내 이야기가 시작된 기분이다. 우선 봄이 오는 길목에서 에너지와 생명력의 상징인 쑥이 눈에 들어왔고, 우중충했던 겨울 하늘 대신에 갓 세수를 끝낸 것 같은 봄 하늘도 새삼 바라보게 되지 않았던가.

늘 보는 강아지도 막상 카메라에 담고 보니 여느 때와는 색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아침나절 택배를 찾으러 공장에 갔었는데 한쪽에 매어 둔 녀석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한 달 전부터 있던 강아지였건만 무심히 지나쳤다가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모습을 찍으면서 나의 무심함을 또 한번 보게 되었다. 사진을 찍는 순간 피사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새로워진 것 같다. 기왕이면 잘 찍기 위해 다양한 각도로 관찰하다 보면 평소 그냥 지나쳤던 털 빛깔이며 눈동자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곤 하였다.

예전에 사진이 처음 들어왔을 때 어른들은 영혼을 빼앗긴다고 찍는 걸 싫어했다고 한다. 사진에 대해서 전혀 몰랐을 때는 그럴 것도 같지만. 오늘 사진을 찍으려고 집중하다 보니 오히려 사진 속에 내 혼이 안착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찍힌 채 나를 바라보는 듯했고 무언의 소통을 한 기분이다.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나를 보지 못했을 테고 나의 환타지에 빠져 꿈같은 하루를 보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진을 정리하고 난 뒤 문득 오래 된 사진첩을 꺼냈다. 결혼식 사진부터 아이들 사진과 최근의 사진까지 들어 있었다. 사진을 통해 오래된 기억과 접속하면서 기나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속에는 통통하니 고왔던 스무 살 때의 내가 있고 훨씬 먼 세월의 강을 건너오면서 살짝 그늘이 진 마흔아홉 살의 내가 들어 있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싶어 마음이 문득 수수로웠지만 사진 속에서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우던 두 딸이 어느 덧 자라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찍은 사진을 보니 입가에 미소가 절로난다.

사진 한 장 한 장 순간순간이 점으로 연결될 동안 나도 모르게 추억의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고나 할지. 사진 한 장에 추억이 한 옹큼은 들었다. 이제는 가 볼 수도 없이 멀어진 기억의 한 모퉁이를 돌아갈 때마다 그 때의 영상이 스치곤 했으니 사진은 추억을 찍어서 마음에 담아두는 작업이었을까.

앞으로 어떤 수업을 받고 어떤 것을 배울지 잘 모르겠으나 사진을 찍으면서 주변의 사물과 교감할 동안 내 삶을 꼼꼼히 기록하고 싶다. 오래 전의 사진을 놓고 거슬러 가다 보면 문득 시간의 그네를 타고 오르내리는 내가 보인다. 살같이 흐른다는 아쉬움에 동동거리기보다는 사진을 찍으면서 찰칵 하는 순간마다 쉼 없이 가는 시간에 브레이크를 걸어보는 셈이다. 벌써부터 사진작가가 된 듯한 착각에 무척이나 유쾌한 하루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