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 (餘韻)
여운 (餘韻)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4.03.2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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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한나절 봄빛이 따스하다.

광장 앞의 봄꽃으로 단장한 큰 화분이 산뜻하다. 한쪽에서 아주머니 한분이 이미 진 꽃대를 정리한다. 문득 발길을 멈춘다. 이유는 없다. 오래전부터 하던 내 모습에 나도 모르게 발길이 멎는다. 아직 가시지 않은 지난 봄날의 정경이 마음 한곳에 선연히 핀다.

부임지가 바뀔 때마다 봄이 오면 화원에 가서 꽃을 구입해 심었다. 유독 꽃에만 집착했다. 연례행사처럼 그것은 나를 잡았다.

자연인으로 돌아온 지금도 그 일이 하고 싶다. 봄이면 피어나는 갖가지 꽃속에 마음을 담고 싶다. 생명을 곱게 연출하는 그들에게 마음이 끌렸다. 꽃은 자연의 한부분이기에 사람의 마음을 선하게 하기 때문은 아닌지.

한참을 그곳에 서서 작업하는 그들의 모습을 살펴본다. 아직 현직에 있었다면 저렇게 등 뒤로 봄 햇살을 받으며 꽃들과 소통하고 있을 것이 아닌가. 가까운 곳에 있어도 떠나온 후 돌아가지 않는 발길은 어쩔수없나보다.

봄언덕에 핀 아지랑이처럼 그리움이 된 지난날들. 아기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묻어나고 맑은 시냇물처럼 낭랑한 목소리가 오늘은 그렇게 그립다. 봄날에.

하얀 석곡이 피었다. 가끔 석곡이 피면 카카오톡에 사진을 찍어 사연과 함께 그리운 사람들에게 보낸다.

퇴임한 그곳에서 동료들과 함께 끈을 묶어준 석곡은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끈끈한 정으로 세월을 잇는다. 지나는 세월과 함께 자라며 피고 지는 흐름 속에 쌓이는 정.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 안에 믿음이 생긴다.

푸른 생명의 나눔을 통해 엮어진 세월이기에 그리움이 묻어난다. 보고 싶다. 봄속에 피는 꽃송이에 아침 안개 같은 뽀얀 얼굴들이 하나하나 담긴다.

그곳을 떠나왔지만 아직도 남은 정은 마음에 여운으로 남는다. 석곡이 봉오리를 열기 시작하면 그들과 함께 차 한 잔을 나누며 다하지 못한 정을 쏟고 싶다. 석곡을 보면서.

미선나무 꽃이 탐스럽게 피었다. 그 꽃은 오래 전에 지인으로부터 받은 어린 나무였다. 세 그루 중 한 그루는 친구에게 분양하고 한 그루는 옥상의 화분에, 그리고 한포기는 앞뜰 담 밑에 화분을 놓아두었다. 앞뜰에 있는 꽃이 땅기운을 받았는지 아주 키가 제법 자라 담장위로 넘길 정도였다.

땅의 정기는 그렇게 생명의 뻗어 감을 찬양해 주는 것 같다. 그 옆에 자리한 한그루는 토기화분에 말없이 서있다.

그 화분은 우리 큰아이와 함께 미선나무 축제때 함께 생산지에 가서 데려온 아이다. 올해는 꽃도 몇 송이 피지 않고 체면유지만 하고 있다. 하얀 미선은 향기가 제법 많이 난다. 그 향기 속엔 큰 아이와의 지난날들이 남아 그 꽃을 볼 때마다 타국에 있는 그를 생각한다. 벌써 2년이 넘었다. 아직 자리가 덜잡혀있어 안쓰럽긴 하지만 가까이 언젠가는 이 향기를 전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미선나무 향기를.

어린 시절처럼 냉이를 캤다. 이모님 댁에 다녀오는 길에 봄이 다 가기 전 꼭 냉이를 캐서 국을 끓여 먹고 싶어서였다. 집으로 오는 길에 시골로 들어가 마을의 산언저리 밭으로 가 보았다.

지난해 배추를 수확한 모습이 남아있다. 그곳에 냉이가 제법 자라 땅에 붙어있었다. 가져간 칼로 열심히 냉이를 캐어 까만 비닐에 담았다. 어린 시절 캐던 냉이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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