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봄을 기다리며
꽃 봄을 기다리며
  • 변정순 <수필가>
  • 승인 2014.03.16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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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변정순 <수필가>

새싹의 앙증맞은 모습에는 생명의 힘찬 용트림과 알찬 내일을 향한 희망이 들어 있다. 동토 속에서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봄바람이 전해주는 소식이 무엇인지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귀 기울인 모습들이다. 아직 가시지 않은 냉기를 막기 위하여 솜털이 함함히 덮인 새싹의 모습에서 털옷을 입고 눈밭에 나온 아가의 귀여움을 본다. 들꽃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도 새봄의 약동이 전해져 자신감이 생겨 날 것 같다. 남녘에서는 꽃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는 것을 보면 오래지 않아 음성에도 곧 봄꽃이 피겠지. 그중 노루귀가 빨리 피었으면 하는데.

꽃샘바람을 타고 겨우내 잊고 지내던 친구의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몸이 아프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하고 오로지 병과 싸우는 일에만 모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 혼자서는 이동능력도 어렵고 자유도 없는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만 남게 된다. 불안정하여 사람 많은 곳은 피하고 친구들 만남도 두렵고 밖에 외출 할 땐 가족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다닐 수 없었던 그녀, 어떤 트라우마적 사건들이 그녀를 마음뿐 아니라 신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그래서 우리는 수 백날을 무관심했으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고 있을 때, 그녀는 몸과 마음의 병을 털고 우리 앞에 선다고 했다. 정말 심신이 좋아 진걸까 꿈인가싶다. 기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지만 정말로 미안하고 또 미안한데 친구를 만나면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하나 일단 기쁜 마음만 갖기로 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그녀는 봄꽃 중 노루귀를 제일 좋아했다. 자기귀도 노루귀를 닮았다나. 나는 놓칠세라 바로 그 애 별명을 노루귀라 지었다. 노루귀는 약간 그늘지고 촉촉한 산 계곡의 높은 곳에서 다소곳이 꽃을 피우지만 잎보다 꽃이 훨씬 먼저 핀다. 가랑잎 사이를 비집고 살며시 꽃대를 내밀면 보송보송한 솜털이 덮힌 턱잎 속에서 꽃잎과 꽃술이 벌어지는 것이 가히 환상적이다. 노루의 귀를 닮은 잎들이 고사리 손처럼 모여 있다. 잎이 노루의 귀를 닮았다. 어째서 노루귀인지 알 길이 없는 이유가 관심을 갖고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꽃의 색도 보라색과 흰색, 연보라색, 연분홍색을 피우는 지역과 장소에 따라 여러가지로 나타나고 꽃잎의 수도 여섯 잎에서 열 한두 잎까지 다양하여 다른 종류가 아닌가 살펴보게 하기도 한다. 노루귀는 줄기가 없는 로제트 식물이다. 뿌리에서 잎줄기가 곧바로 나와 잎을 피우고 꽃줄기도 뿌리에서 직접 나오며 가지가 없다.

그 끝에 한 송이씩만 피우는데 꽃잎이 없이 암술과 수술만 나타난다. 실제로 꽃잎으로 보이는 것은 꽃 밭침 잎으로 벌 나비를 유인하기 위한 방편으로 진화된 것이다. 내 친구의 힘든 일상을 진작부터 노루귀를 살피듯 살펴주었으면 그렇게 아픔을 경험하지 않을 수 도 있었을 텐데. 모두가 마음뿐이었던 것을 자책하면서 그녀 스스로 견디고 일어난 새로운 인생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머지않은 새 봄날, 가냘픈 꽃대를 밀고 올라오는 노루귀의 매력적인 새하얀 털이 그리워 찾는 이들이 많겠지. 그들 속에서 함박웃음 지으며 노루귀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도 꽃 봄이 활짝 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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