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여는 소리
봄을 여는 소리
  •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4.03.1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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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손가락이 갈라지고 손바닥의 허물이 벗겨지고 그 위에 딱지가 생기고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아이의 손을 보며 깜짝 놀란 나는 왜 그러냐고 물었다. 병원에 가야겠다고 하니 소리의 흔적이란다. 장갑을 끼고 하는 건 어떠냐고 했더니 그럴 수 없단다. 연고와 핸드크림을 건네며 자주 바를 것을 신신당부했다. 아이는 대수롭지 않은 듯 이번 공연만 끝나면 시간을 내어 병원에 가리라고 한다.

대학을 입학하며 동아리 활동에 푹 빠져서 주말도 방학도 반납하고 고된 합숙훈련도 마다않고 달려나가던 아이. 얼마나 악기를 친 것인지 엉망이 된 손으로 힘들다는 내색도 한마디 없는 아이. 그 아이가 공연을 한다고 한다.

“앞쪽 중앙부에 앉으세요. 제가 무대 중앙에서 연주하니까 엄마가 다른 쪽에 앉으면 안보일 수도 있어요.” “얘 너는 공연하는 사람이 공연에 집중해야지 관중을 왜 의식하니?”

“관중과 소통하며 하나 되는 것도 공연의 일부에요.” 그렇다. 그것도 공연에서 중요한 것이리라. 난 그 사실을 간과했었다.

꽃을 한 아름 안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그동안의 시간을 갈무리하여 관중들에게 멋진 가락을 선사하는 아이들의 기쁨은 어떤 빛깔일까? 또 얼마나 설레고 얼마나 떨리고 얼마나 벅찰까?

공연장으로 향하는 동안 사물놀이의 의미를 떠올려 보았다. 사물놀이는 원래 풍물굿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쇠는 천둥소리에 비유하며 365일을 나타내고 장고는 비에 비유하며 12달을 의미한다. 그리고 북은 구름에 비유하고 4계절을 나타낸다. 징은 바람에 비유되고 1년을 나타낸다고 한다. 사물놀이는 앉아서 연주하는 앉은반과 서서 연주하는 선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앉은반은 말 그대로 앉아서 연주하며 영남, 웃다리, 설장구, 삼도 등이 있으며 선반에는 서서 연주하는 판굿풍물로 소고(상모)와 열두발상모 놀음도 볼 수 있다.

지난 가을에 아이는 야외에서 선반 공연을 선보였다. 선반 공연은 역동적이고 힘이 느껴졌다. 소슬한 저녁공기와 어울어져 농촌의 풍경을 절로 상상하게 만드는 공연이었다. 농민들이 하는 음악이란 뜻의 ‘농악’을 연상하며 풍요로운 가을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듯하였다. 그날 저녁 하늘에서 둥실둥실 공연장을 비춰주던 달님도, 반짝반짝 손을 흔들어 주던 별님도, 아이의 품에 안겨 수줍게 웃던 국화 향기의 내음도 아련하게 떠오른다.

이번 봄 공연은 앉은반 무대였다. 설장구, 삼도, 영남, 웃다리 순으로 이어졌다. 아이는 사회를 보랴 무대에 오르랴 연신 바쁜 모습이었다. 아이는 어딘가에 몰입하면 귀가 빨개지는 독특한 증상을 갖고 있다. 얼마나 집중을 한 건지 귀가 새빨개져서 마치 루돌프사슴코를 떼어다 귀에 단 듯한 모습으로 땀을 흘리며 열중하고 있었다. 설장고 무대에서는 장고를, 웃다리 무대에서는 북을 두드리는 아이의 모습에서 그동안의 노력이 엿보이는 듯 했다. 그 와중에도 내 얼굴에 눈을 맞추며 씨익~ 미소를 짓는다. 배려하는 마음을 가득 담은 듬직하고 착한 모습에 나도 웃음으로 화답한다.

어느새 사물의 가락에 리듬을 타며 어깨를 흔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동안 시끄럽고 소란하고 재미없는 공연이라고 여겼던 사물놀이에 내가 젖어들고 있었다. 새봄을 사물 소리를 귓전에 담으며 푸르게 열게 해주고, 내 안에 한국인의 정서와 얼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아이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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