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책
겨울 산책
  •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4.03.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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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아침 일곱 시, 오늘도 어김없이 철이가 밥을 달라고 방문을 머리로 치받으며 두드린다. 주말이라 늦잠이 고픈 나는 철이의 소리를 애써 귀 밖으로 밀어내며 침대에 몸 도장을 이리저리 찍고 있다. 그러나 그도 잠시, 문밖에서 들리는 애절한 우리 집 자명종의 낑낑거림을 도저히 뿌리치지 못하고 몸을 일으킨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가니 고요가 훅 날아든다. 온 천지간에 적막이 내려 앉아 있다가 화들짝 놀라 아침 햇살 속으로 숨는다. 아침을 챙겨주고 주섬주섬 점퍼를 걸쳐 입는다. 모자를 쓰고 장갑 안에 손을 집어넣고 철이와 나를 이어줄 끈을 서랍에서 챙긴다.

그와 함께 겨울 아침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앙칼진 바람이 철이의 털을 헤집더니 어느새 내 온몸을 스치며 이리저리 휘돈다. 아침 공기를 밟으며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산책길은 싸늘하지만 상쾌하다. 그와의 인연은 칠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지인이 일주일만 맡아달라고 한 것이 칠년이라는 세월을 훌쩍 넘겼다. 요즘 그는 과체중으로 인해 관절에 무리가 왔다. 의사는 먹이를 줄일 것과 적당한 운동을 시킬 것을 권유했다. 그리하여 우린 불어오는 아침 바람을 맞으며 산책에 나서곤 한다. 아파트를 나오자 휙휙 달리는 차들의 요란한 소음이 바람에 보태져 귓속으로 파고든다.

호기심이 많은 철이는 가다가 멈추어 길가의 이름 모를 풀들을 밟아보고, 또 걷다가 멈추어서 길에 떨어진 돌을 입에 넣어본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지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쳐다보기도 하고 찻길에 쌩쌩거리는 거대한 자동차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한다. 난 그저 그를 기다리고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본다. 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 그는 어떤 마음으로 이름 모를 풀들을, 단단한 돌을, 자동차를, 낯선 사람들을 동공 안에 담는 것일까?

삼십분을 걸어 철이와 나는 뽀얀 안개 속에 드러나는 물빛을 본다. 우리는 그대로 명암지의 아침 풍경이 된다. 명암지에는 가지를 하늘에 걸쳐 놓은 나무들이 옷을 벗은 채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하늘에 걸쳐진 가지 위에서 새들이 지저귀다 이내 하늘 속으로 사라진다. 저수지는 잔잔하다. 저수지는 안개를 떠안고 싸한 겨울 아침 하늘을 그대고 담아내고 있다. 천천히 물가를 한 바퀴 돈다. 오리 떼가 꽥꽥거리며 물가의 아침을 깨운다. 걷다가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시선을 멀리 던져 허공을 바라본다. 허공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이승철의 인연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노래를 흥얼거려본다. 철이와 난 어떤 인연으로 만났을까? 그와 나는 말이 통하지 않지만 서로 배려하며 마음을 나누는 그런 존재이다. 내가 만나는 모든 것들은 우연이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건 나와 인연이 닿아 있는 것이리라.

살면서 많은 인연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동안 나의 곁에 머물렀던 인연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만날 인연들도 그려본다. 어떤 공간에서 어떤 모습으로 누구를 만나든 그 인연에 마음을 다하리라. 그저 배려하는 마음으로 그의 입장에서 기다려 주고 참아줄 줄 아는 사람이 되리라.

삼십분을 되돌아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사랑 철이는 여전히 거리의 풀들을, 돌들을, 지나는 차들을 그리고 스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느리게 느리게 걷는다. 나는 그저 그와 나를 이어주는 끈을 잡고 천천히 따른다. 인연이라는 단어를 되뇌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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