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감각
봄의 감각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4.03.03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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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사람들은 봄이 왔음을 어떻게 감지할까? 달력을 보고 안다고 하는 것은 너무 멋이 없다. 파란 풀이나 붉은 꽃을 보고 알거나, 얼음과 눈이 녹아 흐르는 소리를 듣고 알거나 하는 것이 보통이다. 다시 말해, 이성적으로가 아니라 감성적으로 봄의 도래를 알아채는 것이다. 당(唐)의 시인 왕유(王維)는 봄에 느낄 수 있는 감각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 잡시삼수3(雜詩三首3)

已見寒梅發(이견한매발) : 겨울매화 핀 모습 보이기도 하고

復聞啼鳥聲(복문제조성) :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리기도 하네

愁心視春草(수심시춘초) : 시름 잠긴 마음으로 봄풀을 바라보노라니

畏向玉階生(외향옥계생) : 옥 같은 섬돌 향해 자라날까 두렵다네

 

※ 시인에게 봄은 우선 눈으로 왔다. 겨울 매화가 활짝 핀 것이다. 설중매(雪中梅)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매화는 한겨울 눈 속에서 꽃을 피우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봄이 오고 있음을 감지한다. 매화가 피는 시기는 겨울의 끝자락이면서 동시에 봄의 첫머리이기도 하다. 시람들은 이러한 매화의 발화(發花)를 보고 봄의 도래를 감지하는 것이다. 시인에게 눈으로 감지된 봄은 곧 바로 귀로도 감지된다. 여기저기서 새 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겨우내 둥지 속에 꽁꽁 몸을 숨기고 있던 새들이 밖으로 나와 지저귀는 것은 봄이 왔기 때문이고 사람들은 이 새 소리를 듣고 봄의 도래를 감지한다. 매화의 발화(發花)가 시각(視覺)이라면 새 우는 소리는 청각(聽覺)이다.

시인은 시각과 청각으로 동시에 봄이 왔음을 느꼈던 것이다. 이렇게 봄이 왔음을 감지한 시인은 어찌 된 일인지 기쁨보다 근심이 앞선다. 왜 그럴까? 봄이 온 것은 분명 반갑고 좋은 일이지만 사람의 심리 상태에 따라서는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시인은 지금 근심에 잠겨있고 근심에 잠긴 시인에게 봄은 그리 달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추측컨대 좋은 봄을 함께 즐길 임이 계시지 않기 때문이리라. 삭막한 겨울에는 도리어 잊고 있었던 고독감이 봄과 함께 시인의 폐부를 찌르고야 말았다. 매화가 피고 새가 우는 정도일 때만해도 시인은 봄을 반겼지만 봄풀이 옥 같은 섬돌에 돋아나는 상황이 예견되자 도리어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봄풀이 섬돌에 돋아난다는 것은 거리적으로 봄이 완전히 코앞에 이르렀음을 말한 것일 수도 있고 나아가 돋아난 풀이 섬돌을 가리어서 행여 오실지도 모를 임께서 제대로 찾아오시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 것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봄의 본격적 도래를 시인이 두려워하고 있음을 감각적으로 그린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은 표면에 불과한 것이고 이면적으로는 봄의 본격적 도래를 절묘하게 묘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섬돌에 풀이 돋아난 모습을 보고 느끼는 두려움을 시인이 그리고자 한 것이 아니다. 섬돌까지 목전에 자란 풀, 또는 섬돌을 덮을 만큼 무성히 자란 풀이 두려울 만큼 성큼 다가온 봄을 시인은 그리고자 했던 것이다.

일년 사계절 중 사람들에게 가장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철은 아마도 봄일 것이다. 그 이유는 무채색과 적막함의 겨울 직후에 나타남으로써 대비효과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매화가 피고 새 우는 소리가 들리면 봄은 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섬돌에 풀이 돋아나 임 없는 설움이 새로워질까 두려운 마음이 들면 봄은 이미 다 온 것이다. 시각, 청각에 심리상태까지 봄은 가히 감각의 도가니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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