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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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4.02.2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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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설 쇠고 바로 제주도에 다녀왔다. 마지막 코스로 서귀포에서 새섬 산책로를 가기로 했다. 새섬에 가려면 새 연 교를 건너야 한다. 이 아름다운 다리를 건너는데 바람이 어찌나 심하던지 멋도 낭만도 찾을 수가 없었다. 바람에 떠밀려 간 것 같다. 그런데 다리를 건너자 거짓말처럼 바람은 사라졌고 새섬은 햇살 좋은 봄날 오후처럼 포근했다. 마치 겨울과 봄 사이에 새연교가 놓여 있었던 것 같은.

겨울이라 하기엔 날이 조금 무뎌졌고 봄이라 하기엔 억지를 부리는 것 같은, 겨울과 봄 사이에 2월이라는 다리가 놓인 것 같다. 남도에선 꽃 소식이 들려오고 강원도에서는 도시가 눈에 갇혀 일상생활이 마비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온다. 이것도 우리나라 2월에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새연교를 건너 새섬을 걸으며 2월과 다리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도시를 아름답게 하는 건축물 다리, 서울의 젖줄 한강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다리가 그 위용을 자랑한다. 청주에도 동과 서로 이어 주는 청주대교를 비롯하여 흥덕대교, 꽃다리, 남석교 등이 무심천 위에 놓여 있다.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고 섬과 섬을 이어주고 사람과 사람을 맺어주는 다리, 겨울과 봄 사이 2월은 계절을 건너는 다리다. 살아가는 과정에도 늘 다리가 놓여 있다. 무섭다고 건너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에 갈 수 없고 준비 없이 무작정 건넜다간 무슨 낭패를 당할지 모른다.

2월을 우리말로 시샘달이라고 한다. 새해를 시작하는 1월 지나 2월, 3월은 새 학년이 시작된다. 1월과 3월 사이에 시샘달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시샘이라도 부리지 않으면 존재를 알아주지 않을 것 같아 변덕을 심하게 부리나 보다. 따뜻해질라 치면 찬바람을 몰고 오고 춥다고 단단히 여미고 있으면 남녘에서 따스한 바람을 몰아오니 겨울을 시샘하고 봄을 시샘한다 하여 그리 이름 지었나 보다.

2월의 산술을 서양에서는 카이사르가 7월을 자신의 이름을 딴 ‘율리(July)‘로 바꿨듯이 그 흉내를 내듯 8월의 명칭을 아우구스투스(Augustus)’로 바꾼 황제는 한 술 더 떠 8월이 30일밖에 안 되면 자존심이 서지 않는다고 2월에서 하루를 떼 내어 8월31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2월의 평년은 28일 윤년은 29일 팔자가 되었다고 한다. 과학과 합리성의 산물이어야 할 달력이 권력에 의하여 왜곡되었다는, 따지고 보면 2월의 운명은 얄궂은 정치의 희생물이라는 재미있는 말도 있다.

살면서 나에게 건너기 힘든 다리가 여러 번 있었지만 가장 건너기 어려웠던 다리는 배우자의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몇 년을 만나 왔음에도 나는 혼인 날짜를 잡아놓고 많이 망설였다. 다른 부부도 나와 많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살면서 남편과 몇 번의 고비를 넘으며 여기까지 왔다. 당장에라도 다 버리고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편과 나를 이어준 것은 아이들이다. 2월이 가기 전에 우리 부부를 지금까지 이어준 단단한 다리들을 불러 맛있는 밥이라도 해 줘야겠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학교를 다녔지만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졸업생이 아닌 것은 아니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사는 부부도 있다. 그럼에도 결혼식이나 졸업식 같은 형식을 꼭 거처야 완성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월과 다리는 꼭 그런 느낌이다.

2월에 새연교를 걸으며, 연초의 분주함도 없고 주목받을 만큼 새롭지도, 다른 달보다 크지도 않지만 쉬어 가는 달, 편안한 사람과 아름다운 다리를 건너는 여유로움이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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