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들의 농성
치아들의 농성
  • 김우영 <작가. 한국문인협회>
  • 승인 2014.02.1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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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우영 <작가. 한국문인협회>

충남 당진에서 살 때의 일이다. 딸아이가 다니는 유아원에서 하계 캠프파이어를 한다고 학부형을 초대한단다. 딸 애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수다를 떨면서 인디안 복장과 몸치장으로 분주하다. 아내도 여고시절 아름다웠던 여름날 캠프파이어 정경이 생각나는지 덩달아 설레인다.

준비를 마친 우리 가족은 자가용으로 유아원에 갔다. 밖은 조금씩 어둠으로 덮혀 까아만 밤을 준비하는 초저녁이었다. 마냥 좋아하는 딸아이 둘과 아내를 태우고 유아원에 도착했다. 유아원 마당엔 벌써 다른 집의 가족들과 캠프파이어 준비로 원생들과 담임 선생님들로 분주했다. 아내는 우리 가족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더니 가족합창 노래 맞추기를 끝으로 한 번 더하자고 성화이다. 꼭 입상을 해야겠단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우리 네 식구는 모여 <아빠와 크레파스>란 동요로 앙상블에 들어갔다.

잠시 후, 딸아이 바램이의 담임인 듯한 여선생님이 우리 가족이 노래하는 곳으로 왔다.

“어머, 따님 가족이네요. 노래 연습중이군요. 잘해서 입상하세요.”

겸연쩍어 인사를 하자, 담임 선생님은 상냥하게 웃으며 말한다.

“글을 쓰신다고 들은 것 같은데요. 그리고 술을 대단히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가끔 원생들한테 미술시간에 아빠 얼굴을 그리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따님은 늘 얼굴이 빨갛거나, 술잔을 들고 있는 아빠 얼굴을 그린답니다.”

아뿔싸! 나는 무안해하며 잠시 화장실을 가는 척하고 자리를 피했다. 오죽했으면 딸아이가 술에 취한 내 모습을 그렸을까.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루가 멀다하고 곤드레 만드레 취해 밤 늦게 들어오는 아빠를, 바램이가 볼 때는 아예 술만 먹는 아빠라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캠프파이어 준비로 들떠있는 모습들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40대 중반의 유아원장 사회로 진행된 행사는 원아들의 갖은 재주와 묘기, 학부모님이 같이 참여하는 순서로 다채롭게 진행이 되었다.

캠프파이어를 마치고 늦어가는 밤에 밤이슬을 맞으며 집으로 향했다. 막 시내를 지나는데 평소 터놓고 잘 지내는 사람이 나를 부른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는 둘은 인근의 술집에 들어가 술을 마셨다. 그도 부부싸움을 했는데 적임자가 없어 망설이던 중에 나를 발견하고는 반가워 불렀단다. 둘은 그렇지 않아도 술 생각이 나던 터라는 듯이 이런저런 객담을 늘어놓으며 술병을 비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1차 술좌석까지는 좋았으나 둘은 취해 2차까지 갔다. 그래서 맥주까지 혼합하여 마셨으니, 그야말로 대취(大醉)했다. 다음날 아침, 속이 메스껍고 목이 말라 눈을 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얼마 전부터 풍치로 조금씩 고통을 주던 어금니가 쑤시고 온통 난리가 났다. 너무 아파 입을 감싸쥐고 뒹굴었더니 아내는 풍치가 아니라 주통(酒痛)이니 사필귀정이라며 비양거린다.

사무실 출근이고 뭐고 이빨이 아파 정신이 없었다. 대충 옷을 챙겨입고 간 밤의 술로 작취미성(昨醉未醒)인데다 이빨이 아파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읍내 병원을 향해 걸었다.

출근길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정신없이 입을 막고 걷는 내가 이상한지 지나치면서 더러 힐끗힐긋 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병원을 향해 걸었다.

문득 요즈음 대학가에서, 노사 근로 농성장 등에서 들려오는 붉은 깃발과 원색적인 외침의 구호가 나의 입안에서 온통 들끓고 있는 것 같았다. 윗니, 아랫니, 대문니, 어금니 등이 울긋불긋 깃발과 현수막을 들고 종(縱)과 횡(橫)으로 오가며 온통 입안에서 극렬하게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주력 30여년의 세월이 흐르건만 언제나 이 농성이 끝이 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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