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뱃돈
세뱃돈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4.02.1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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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손자 손녀의 세배를 받은 게 엊그제 같은 데 청마(靑馬)는 역시 더 빨리 달리는지 어느 새 2월 중반을 넘어섰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절하는 아기들로부터 절을 받는 기쁨은 설의 한 몫을 차지한다. 아직은 손자 손녀들이 어려서 세뱃돈의 액수에 연연하지 않을 나이니 절을 받는 부담이 없어 마냥 좋다.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설 연휴가 끝난 후 아이들의 일기장엔 온통 세뱃돈을 받은 이야기로 가득 채워졌다. 쉬는 시간에도 세뱃돈을 많이 받은 아이일수록 자랑스러워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 같았다.

일기장을 보면서 또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에게 준 세뱃돈치고는 너무 많은 액수에 놀라웠고, 그 많은 돈을 받고도 만족할 줄 모르는 어린이들에게서 세월의 변화를 다시 한 번 실감하였다.

우리 세대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에는 설이 다가오기 한 달 전부터 설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아주 소박한 기다림이었다.

일 년에 한번 밖에 먹지 못했던 떡국에 대한 기대와, 설이나 추석에만 얻어 입을 수 있었던 설빔에 대한 설렘과,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고 나면 손에 들려주시던 알록달록한 막과자를 받던 즐거움으로 설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요즘의 아이들은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아쉬울 게 없으니 그저 절을 하고 나서 듬뿍 받는 세뱃돈 때문에 설을 기다리는 것 같다.

세뱃돈을 받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어려운 시절이어서 어머니께서 손수 지어 깊숙하게 넣어두신 노란색 저고리와 빨간색 치마를 몰래 꺼내 입어보며 설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그 아름다운 추억을 지금의 아이들은 알 리가 없다.

언제부터 세배를 하면 돈을 주는 풍습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용돈 정도의 적당한 세뱃돈은 아이들에게 설에 대한 기대와 기쁨을 줄 수도 있어 좋은 풍습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액수가 너무 크다면 자칫 아이들에게 세배의 의미를 어른에 대한 존경과 감사 대신에 돈으로 계산하는 좋지 못한 마음을 심어주진 않을까 염려가 된다.

설 날 아침이면 집안이 시끌벅적하게 명절을 쇠고 이집 저집 웃어른께 세배를 다니며 나이 한 살을 더 먹은 자랑스러움으로 한 해를 시작하던 설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 되었고, 설날의 연휴를 이용해 해외 나들이를 하는 사람이 급증하는 현실이 되었으니 앞으로 우리나라의 고유명절인 설의 존재여부가 언제까지 그 명맥을 이어나갈지도 의문이 든다.

나이 들어 생각해보니 우리의 인생에 있어 가끔씩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기도 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인데 지금의 아이들에겐 오직 휴대전화나 컴퓨터가 있을 뿐이니 먼 훗날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땐 과연 어떤 향수를 느낄 수 있을까 삭막한 느낌마저 든다.

급격한 경제발달로 황금만능시대에 사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돈의 소중함을 가르치기보다는 너무도 일찍 돈의 위력을 보여주고 가르쳐 주었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를 쫓아야하는 바쁜 아이들의 삶에 돈의 가치가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즘 가끔은 지나칠 정도로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들에게서 어린이다운 순수함을 볼 수 없을 때에 아쉽기도 하며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우리 고유의 문화를 접하며 추억을 만들어 주는 게 어른들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또한 사라져갈 위기에 놓인 우리의 고유문화를 계승시키려면 거액의 세뱃돈을 주느니 보다는 어린이들에게 진정으로 조상님을 생각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헤어졌던 가족들을 만나는 기쁨을 주는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며칠 전 지나간 정월 대보름엔 온갖 맛있는 나물 반찬에 오곡밥을 지어주시던 어머니 생각에 잠시 마음이 울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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