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 즈음하여
이별에 즈음하여
  • 김희숙 <수필가·비봉유치원교사>
  • 승인 2014.02.13 18: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김희숙 <수필가·비봉유치원교사>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내곁을 스쳤다. 다리 수술을 하여 깁스를 한 채 느티나무 언덕이 바라보이는 이곳에 발령을 받았었다. 집근처에 가까이 왔다는 기쁨도 잠시, 아이들의 재잘거림 속에 파묻혀 정신없이 생활하던 시간들이 이제는 깁스를 풀고 희미한 흉터를 간직한 채 천일을 훌쩍 넘겼다.

그동안 내곁에 머물렀던 햇살과 바람과 하늘과 푸르른 잎새와 그리고 고마운 사람들!

이렇게 까만 밤이면 창밖에 걸어놓은 불빛처럼 그간에 나를 지켜줬던 사람들의 얼굴을 내 마음의 방에 하나 둘 걸어본다. 

이별에 익숙한 나.

해마다 발령이 나고 해마다 구성원들이 조금씩 자리를 이동하는 구조의 직장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연중행사처럼 되었다.

나의 한해는 일상적인 다른 사람들의 한해와 주기가 다르다. 나는 한해의 첫 단추를 3월에 채우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해를 맞이하며 한해를 설계한다. 그러나 난 3월 발령을 맞이하며 한해의 설레임에 두근거리고 또 맞는 이별에 서걱인다. 

그러나 해마다 이별은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지난 세월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주고, 지나간 관계들을 회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한다. 이별에 즈음하여 눈을 감으면 지난 순간들이 팝콘처럼 툭툭 부풀어 올라 뽀얀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섬세하지 못하고 덤벙대기 일쑤인 나로 인해 고생했을 방과후 과정 선생님들, 묵묵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월의 먼지를 털어주셨던 하모니선생님들과 교무 보조 선생님, 따듯한 미소로 가슴을 녹이던 돌봄 선생님들, 우리 유치원의 유일한 남자들의 소굴 행정실에서 소리없이 지원해 주며 듬직하게 웃어주던 행정실 직원들, 즐거웠던 일 가슴 아팠던 일들을 함께 들어주며 곁을 내주었던 기본 과정 선생님들, 어려운 순간에 직면했을 때마다 명쾌하고 정확한 해답을 주시며 항상 내 곁에서 든든한 아군이 되어주신 원감선생님, 잔잔한 미소와 함께 ‘믿는다’는 짧고 강한 단어 하나로 조용한 카리스마를 발휘하셨던 원장선생님, 그리고 아침마다 ‘선생님 예뻐요~!’라는 집단 주술을 걸어주며 내게 힘을 주었던 사랑하는 천사들!

오늘 난 그들을 추억이라는 이름의 내 방에 들였다.

그리움이라는 시간과 만나 내가 문을 열 때마다 따듯한 아랫목처럼 나를 다독이며 안아줄 사람들에게 내방을 하나 내주었다. 언제고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이 머무는 그런 추억의 방이 될 것이다.  

살아오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진다.

그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 3년이었다. 소중한 사람과의 인연이 내 인생을 얼마나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지 깨달은 시간들이었다. 잊지 않고, 하나도 잊지 않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 내가 누렸던 행복한 시간을 소중한 인연으로 끝끝내 되갚겠다고 다짐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