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성기
나의 전성기
  • 심억수 <시인>
  • 승인 2014.01.09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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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심억수 <시인>

갑오년은 나에게 특별한 해이기도 하다. 육십갑자의 갑으로 돌아온다는 내가 세상에 태어 난지 6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나는 신이 준 삶의 궤적대로 살았다. 이제는 삶의 틀에서 벗어나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도 나의 임무는 마칠 시간이고 이제는 덤으로 사는 삶이라는 생각으로 좀 더 헐렁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보는 새해이다.

갑오년 첫 휴일을 맞이하여 만뢰산을 등반하였다. 자연과 더불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산행은 나를 더욱 성숙하게 한다. 마음으로 통하는 지기들과 어울려 산행하다 보면 심신의 피로도 말끔히 풀린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락내리락 걸으니 눈에 들어오는 모두가 새롭다. 어제 바라본 풍경이 오늘과 다르고 날마다 마주치는 사람들도 매일 다르다는 것을 이제야 느낀다. 이렇듯 늘 새로운 변화와 함께하면서도 변화를 눈치를 채지 못하고 60년을 빠른 걸음으로 지냈다.

하얀 눈 위로 햇살이 미끄러지며 앞서 걸어간다. 알싸한 바람이 코끝에 매달린다. 심호흡하며 나를 돌아본다. 정상에 올라서니 구불구불 굴곡진 길이 아름답게 보인다. 나의 길도 늘 편안하고 아름다운 길만은 아니었다. 만뢰산 등산길을 걷듯 때로는 언덕도 만났고 돌부리에 넘어지기도 하면서 힘들게 여기까지 왔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참으로 멀리도 걸었다. 어떤 날은 갈림길에서 목표를 잃고 방황하기도 했다. 그때는 험난한 나의 길이 내 인생의 치욕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뒤를 돌아보니 그 또한 아름다운 도전이고 삶의 여정이었다. 환갑이 되어서야 가쁜 숨을 몰아치며 걸어온 나의 길이 아름답다는 걸 알았다.

주마등 같이 떠오른 지난날의 상념에서 벗어나 만뢰산 정상 표석에 준비해온 시산제(始山祭) 제물을 진설하였다. 일행은 경건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고 축원을 올렸다.

2014년 1월 5일 오늘 저희 일행은 이곳 만뢰산 정상에 올라 좌로는 청룡이요, 우로는 백호요, 남으로는 주작과 북으로는 현무를 각각 거느리고, 이 땅의 모든 산하를 굽어보시며 그 속의 모든 생육을 지켜 주시는 산신령님께 고하나이다.

나라의 안녕과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의 가정에 가화만사성을 이루도록 기원 하나이다. 아무쪼록 바라오니, 각자 품고 있는 꿈과 희망을 위하여 무궁한 열정으로 혼 힘을 다하도록 힘을 주시옵고, 만뢰산 정상까지 찾아온 우리의 두 다리가 지치지 않도록 힘을 주시옵소서. 천지간의 모든 생육은 저마다 아름다운 뜻이 있나니,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도 함부로 하지 않으며, 그 터전을 파괴하거나 더럽히지도 않으며, 새 한 마리, 다람쥐 한 마리와도 �!玖� 지내고, 추한 것은 덮어 주고, 아름다운 것은 그윽한 마음으로 즐기는 그러한 산을 닮은 사람이 되고 싶나이다.

오늘 저희가 준비한 술과 음식은 적고 보잘것없지만 이는 우리의 정성이오니 어여삐 여기시고 즐거이 받아 거두소서. 이제 올리는 이 술 한잔 받으시고, 모두가 꿈과 희망을 이루어 나라가 안녕하기를 기원 하나이다. 상향(尙饗)

시산제를 올리고 내려오는 산길 마음이 상쾌하다. 발걸음 또한 가볍다. 하얀 눈 위에 커다랗게 사랑해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분명 올라갈 때도 쓰여 있었건만 지나쳤다. 새삼 고은 시인의 그 꽃이라는 시가 생각나 읊어보았다.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보지 못한/그 꽃 갑오년을 맞아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는 나이가 되었다며 삶의 전성기가 끝났다는 친구의 풀죽은 푸념을 들으면서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인생은 60부터다. 삶의 전성기는 정해져 있지 않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다르다. 지금까지 삶의 터전에서 치열하게 투쟁적으로 살았으니 이제는 시간을 즐기면서 여유롭게 살아갈 때다.

전성기는 자신의 삶이 가장 아름다울 때이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내려오면서 볼 수 있는 지금이 내 생의 가장 아름다운 때이다. 내 삶의 전성기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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