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나눔
진정한 나눔
  • 박명애 <수필가>
  • 승인 2013.12.0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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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애 <수필가>

며칠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광고가 한 장 붙어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해 가게를 이전했습니다’

큰 길에 있던 미용실이 골목 안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할인 안내도 있다. 자세한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상황은 짐작이 된다. 미용실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음이다.

나는 아파트 주변 미용실에서 머리를 한다. 헤어스타일을 자주 바꿀 일도 없는데다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 염색을 하거나 머리끝을 정리하는 정도지만 늘 반갑게 맞아주는 미용사가 고맙다. 예전엔 꺼려하던 미용실 수다가 편안하게 귀안으로 흘러드는 걸 보면 나이 탓인가 싶기도 하지만 고만고만한 삶들이 껴안고 살아가는 걱정들에 공감하고 소통하며 불안과 고독을 나누는 치유의 장이 되기도 한다.

고집스럽게 긴 머리를 고수하는 내게 가끔 친구들이 좋은 미용실을 소개하곤 한다. 사실 긴 머리를 고집하는 게 아니라 어쩌지 못한다고 해야 옳다. 더우면 질끈 묶으면 되고, 파마 한 번 하면 그럭저럭 일 년은 버틸 수 있다. 편안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어떤 헤어스타일이 개성적인 나를 표현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한두 번 유명 미용실에도 따라가 보았지만 특별히 맘에 드는 것도 아니고, 세련된 매너를 가진 스탭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는 것도 불편하다. 실제로 이런 저런 패키지들에 고개를 끄덕이다 보면 머리 파마하는 데만 수십 만원이 든다. ‘내가 미쳤나봐’ 계산하면서 후회하는 친구를 보며 예쁘다고 할 수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실제로 예쁘기도 하다. 파마 웨이브가 우아하고 머릿결도 훨씬 좋아 보인다. 마음먹으면 미친 척 머리 한 번 해볼 수도 있겠지만 내키지 않는다. 무언가 마음이 불편하다. 수 십 만원 하는 머리를 하고 누구는 후회하며 가계부를 걱정하지만, 누구에게는 품위를 유지하는 자연스러운 일상일 뿐 일게다. 사실 품위 있는 사람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나뉠 뿐. 그리고 그 능력은 대부분 경제력에 기반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품위를 높여주고 권력을 만든다. 부를 가진 사람을 탓하거나 원망하는 것이 아니다. 수 십 만 원짜리 머리 손질도 나름 모두 까닭이 있다. 다만 이미 자본주의에 물들어 버린 우리의 가치관에 대해 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된 고민으로 자발적 가난을 얘기하고 나눔의 실천이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변화의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광고한 미용실 주인과 비슷한 영세 사업자들이 한둘 아니며 처음 본 일도 아닌데 연말에 접하는 소식은 유독 마음을 쓰이게 한다. 12월 시작과 함께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이 시작되었다.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줄을 잇고 있다.

나 역시 약간의 성금을 내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소시민으로 올해를 마감하게 되리라. 진정한 나눔은 ‘적선이나 자선이 아니라 적선과 자선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 (김규항『예수전』)이라는 말이 가슴에 무겁게 남아 나를 부끄럽게 한다. 그래도 오늘은 핼쑥해 보인다고 파마라도 하라는 친구 잔소리 때문이라도 미용실에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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