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 그 난해함에 대하여
호칭, 그 난해함에 대하여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13.11.25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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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십여 년째 배달 전문 치킨 점을 운영 중이다. 그러다보니 고객과의 소통이 대부분 전화로 이루어진다. 고객의 목소리만으로 얼굴을 상상하기도 하고 때로는 기분상태를 읽어내기도 한다. 한 자리에서 오래 하다 보니 단골 고객이 늘어나고 만난 적은 없지만 가까운 이웃처럼 자연스럽게 친분이 쌓이기도 한다. 내가 주문 전화를 받을 때 호칭을 사용할 일이 있으면 항상 고객님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고객들에게 나는 언니도 되었다가 사장도 되고 때로는 편한 이웃아줌마로 불릴 때도 있다. 아이들에게는 고모가 되기도 하고 이모로 불릴 때도 있으니 어쩌면 나는 세상에서 제일 많은 조카를 거느린 복 많은 사람이기도 하다.

나라고 처음부터 이 다양하고 난해한 호칭들이 익숙한 건 아니었다. 고객들이 언니, 이모하고 부르면 내가 왜 네 언니며 이모냐며 따져보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갑,을 관계가 분명한 터에 거슬려도 참아내며 주문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이년이 지나 십여 년이 되어가니 호칭이 아무렴은 어떠하랴 싶었다. 매출이 올라 가정 경제가 넉넉해질 수 있다면 우리 동네 아이들이 모두 내 조카여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적응이 안 되는 호칭이 있다. 고객이 언니라고 부를 때다. 언니라고 불러주는 고객이 같은 여자라면 수천 번을 들어도 상관없을 터였지만 상대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다. 그 남자가 전화로 ‘언니야’ 라고 부르며 주문을 할 때마다 호칭의 난해함에 당황스러웠다.

결혼 전 내가 남편을 부르던 호칭은 아저씨였다. 생각해보니 다른 부서 직원을 달리 부를 호칭을 알지 못해 아저씨로 불렀던 것 같다. 그런데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 아저씨와 연애를 해서 결혼까지 하게 될 줄. 옛말에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결혼 후에도 남편을 아저씨라 불렀다. 시댁 어른들 앞에서도 친정 식구들 앞에서도 잘못된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큰 아이가 태어나 세 살이 될 때까지 내게 남편은 아저씨였다.

아이가 말을 배우고 아빠 엄마 소리를 곧잘 하기 시작했을 즈음이다. 가족모임이 있어 친정에 갔을 때였다. 발음도 서툴던 아기가 제 아빠를 아저씨라 부르며 따라 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어이가 없는지 가족들로부터 이상한 촌수라며 꾸중을 들어야 했다. 나 역시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비로소 올바른 호칭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달았다.

요즘에는 스스럼없이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부부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리고 시장이나 가게를 가면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졸지에 족보에도 없는 고모도, 이모도 되는 세상이다. 남자가 여자한테 언니라고 간드러지게 부른들 누굴 탓하겠는가. 하지만 호칭, 그 난해함을 두고 한번쯤은 올바르게 부르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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