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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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13.11.14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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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맛있게 드세요”

오늘은 금요일, 여성회관에서 무료 급식을 하는 날이다. 우리 단체 회원들 모두 봉사를 하며 어르신들께 식사를 대접한다. 요구르트와 젓가락을 드리면서 하는 말인데, 듣는 사람은 한번이나 우리는 한 분 한 분께 일일이 인사를 하자니 수십 번을 되풀이하게 되므로 수월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반응이 오는 분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 같으면 잘 먹겠다든지 하는 인사를 하련만 모두가 묵묵부답 말이 없다. 마땅치 않은 마음보다는 늙고 병들다 보면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약속이나 한 듯 무표정한 얼굴이 그것을 나타낸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짠해진다. 식사를 제공해 주는 사람에게조차 고마운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심정이 오죽할까 싶다. 연민도 연민이지만 인간의 생로병사를 한눈으로 보는 느낌이다. 늙고 병들면 다들 저렇게 초연한 얼굴로 바뀌는가 보다. 오전 내내 반찬 준비하느라 짜증스러웠던 마음이 슬그머니 뒷전으로 물러난다. 이번 주는 내가 소속된 단체가 봉사 담당인데 유난히 어르신들이 많았고 여러 사람을 시중들다 보니 또 그만치 힘들었다.

솔직히 그 동안은 봉사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전까지 내게 봉사의 개념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차원의 부유층 사모님들이 메스컴을 통해서 하는 봉사나 죄값을 대신해 치르는 봉사 정도로만 생각했다. 또 작은아이 고등학교 다닐 때 자원봉사 인증제에 따른 봉사시간을 채우기 위해 봉사하는 것을 보면서 ‘자발적이면서 보상이 따르지 않아야 진정한 봉사지’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가 올부터 주부교실음성군 지회장을 맡게 되면서 ‘봉사’라는 단어를 새삼 정립하고 있는 단계다.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봉사는 집에서 할 일 없는 사람만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마음도 바뀌었다. 자의든 타의든 봉사 시간을 먼저 배려하니 시간이 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자원봉사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역할이 참 다양한 것도 알았다. 밑반찬을 직접 배달하는 친구의 말에 의하면 어떤 할머니는 금요일만 기다리고 있다가 들어오라고 청한다고 했다. 그러면 같이 차도 마시며 말벗도 해드린다고 했다.

또 어떤 봉사자는 인근의 할머니 댁을 방문했더니 편찮으셔서 병원으로 옮겼다는 얘기와 민원을 해결해 주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자원봉사자의 역할이 얼마나 다양하고 중요한지를 알 수 있거니와 초보인 나에게는 먼 얘기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자원봉사센터에 적을 두고 있으니 진정한 봉사의 참맛도 알게 될 것 같다.

봉사의 의미는 다양하게 변화해왔다. 그 옛날에도 봉사차원의 행사는 많았다. 흉년이면 임금에서부터 정경부인에 이르기까지 금반지와 옥비녀, 노리개 등 패물을 내놓고 곳곳에 솥을 걸어 노약자와 양민을 대접했다. 가난 구제는 나라에서도 못한다고 대대적으로 해봤자 죽 한 그릇 정도밖에 차례가 오지는 않으나 그 한 그릇 먹어서 배부른 게 아니라 춥고 헐벗을 때 도움을 받는 그 사실에 더 많은 힘을 얻는 게 아닐까.

며칠 전 아는 후배가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기에 자원봉사센터에 등록할 것을 권했다. 아무래도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체계적인 교육도 받고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하면 즐겁게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자원봉사센터와 함께 동행하는 즐거움이 요즘들어 내가 가지는 최고의 행복이자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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