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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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9.12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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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며느리의 지혜
각안스님 <백운사>

월출산 산마루에 붉은 노울이 물들 무렵 드넓은 절터 한복판에 한 노인이 흰 수염을 날리며 못박힌 듯 망연히 서있다.

발아래 널려있는 서까래를 번쩍 세워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눕힌 후 자로 재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몇 번 되풀이하던 노인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상한 일이야. 아무리 재어도 짧으니 알 수 없는 일이군."

때는 신라 말엽.

왕은 안으로 기울어 가는 국운을 걱정해 지금의 전남 영암군 월출산 기슭에 큰 절을 짓게 했다.

당시 왕궁 이외의 건물은 100칸을 넘지 못하도록 국법에 정해져 있어 왕은 하는 수없이 99칸의 대웅보전을 신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게 건립할 것을 엄명한 것이다. 대불사의 서까래를 맡은 목공은 바로 사보라라는 노인이었다.

건물이 아름답고 웅장하려면 하늘을 차고 나를 듯 치솟은 지붕을 한껏 살려야 하며 그러려면 서까래를 잘 다듬어야 했다. 그런 까닭에 당대의 뛰어난 대목수 사보라 노인에게 일을 맡겨졌다.

팔순이 넘은 노인은 불사를 필생의 작업으로 삼아 온 정서를 다해 나무를 깎고 다듬었다. 상량을 열흘 앞두고 500여개의 서까래를 만들었다.

그러나 낱낱이 자로 재면서 깎은 서까래가 도면보다 짧게 끊겨져 있었다.

노인은 재고 또 재보았으나 한 번 짧게 끊긴 서까래가 길어질리 없었다.

"새로 나무를 깎을 수도 없고 상량은 며칠 남지 않았으니 이를 어찌할까 왕명을 어긴 죄가 크니 어찌하나"

노인은 근심으로 얼굴을 펴지 못했다.

"팔십 평생 나무와 함께 늙어온 내가 이제 평생을 건 마지막 공사에 실수를 하다니."

그는 서있는 나무만 보아도 나무의 나이를 알았고, 껍질 속이 얼마나 굳으리라는 것도 알았다. 사보라 노인에게 있어 집 짓는 일은 창조와 희열을 동반하는 예술이며 삶의 보람이었다.

노인은 절망의 밑바닥에서 안간힘을 썼다. 생명의 불꽃이 하루 아침에 꺼지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온 노인은 그만 자리에 눕고 말았다. 근심으로 가득한 노인은 온 생애가 마치 땅속으로 잦아드는 것만 같았다.

노인은 평생 동안 지어왔던 집들을 하나하나 기억에 떠올렸다.

열다섯 살 되던 해 목수의 집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던 일, 고생 끝에 처음으로 끌을 잡고 집 한 채를 완성했던 일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어떻게 무엇으로 다시 시작한단 말인가"

노인은 갈수록 근심만 커졌을 뿐 대책을 찾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밥상을 들고 들어온 며느리가 조심스럽게 시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님 저녁 진지 좀 드셔 보세요. 약도 안잡수시고. 아버님 혹시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신지요."

"아니다. 아가 난 생각이 없으니 상을 물리거라. 내가 무슨 병에 걸린 것도 아니니 걱정 말아라."

"제가 시집 온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집안에 우환이 있으면 모두 제 탓인 듯 해 송구스럽습니다."

"아가 네 탓도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 염려 말아라."

"아버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미숙한 지혜나마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제발 말씀해 주십시오."

노인은 며느리의 간곡한 청에 못이겨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이 말을 들은 며느리는 눈앞이 캄캄했으나 아무 내색없이 물러나 마당에 섰다.

그때 며느리의 눈앞에 이상한 것이 비쳤다. 한 줄로 가지런한 서까래가 두 줄로 보였다. 처마 밑으로 바짝 다가서서 보니 한 줄이었다. 며느리는 비로소 깨달았다.

집안과 바깥의 불빛이 어우러져 그림자가 그렇게 보인 것이었다. 순간 며느리는 시아버님께 뛰어갔다.

"아버님 서까래가 짧게 다듬어졌다고 하셨죠"

"네게 무슨 방도라도 있단 말이냐"

"짧은 서까래에 다른 서까래를 겹쳐 대면 더 웅장하고 튼튼하지 않겠습니까"

노인의 눈앞에 아직까지 없었던 날아갈 듯한 한 채의 건물이 보였다.

노인은 무릎을 치며 "아가야 부연하면 되는걸 여태 모르고 있었구나. 그 육중하면서도 날렵한 몸매가 선하구나. 부연, 그 지붕의 멋을 감히 누가 흉내낼 수 있겠느냐. 어서 나가봐야겠다"라고 말하고는 서까래를 다듬을 준비를 했다.

"아버님 밤이 이렇게 늦은데 어떻게 나가시려고 하십니까"

"네 말대로 부연목을 대야겠다. 상량일도 며칠 남지 않았으니 얼른 서둘러야지"라며 황급히 집을 나섰다.

노인은 언제 누워 있었냐는 듯 원기왕성했다.

더 넓은 절터에서 온몸에 달빛을 받으며 기둥과 기둥, 대들보에서 처마 끝을 재는 노인의 날렵한 모습은 마치 춤을 추는 듯 했다.

교교한 달빛 속에 흰 수염을 날리며 신들린 듯 부연을 켜기 시작한 노인의 표정은 사뭇 엄숙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도갑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연식 지붕 건물이 됐다.

한편, 부연이란 말은 며느리가 도와서 만든 서까래라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도갑사는 지방문화재 42호였으나 1975년 화재로 전소됐다가 지난 79년 옛모습 그대로 중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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