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도 흔들린다.
수평선도 흔들린다.
  • 심억수 <시인>
  • 승인 2013.11.05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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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심억수 <시인>

문학기행의 명분으로 바닷가에 섰다. 멀리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자리 수평선이 보인다. 수평선은 나에게 꿈을 심어주던 동경의 대상이었다. 수평선 너머는 미지의 세계가 있을 것 같다. 수평선 너머의 세상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충청도 산골에서 낳고 자라서 늘 바다를 동경하고 살았다. 바다 앞에 서면 나의 꿈도 바다만큼 커지고 많아지며 바다만큼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제 꿈도 희망도 점점 멀어지는 나이가 되어서 바다에서 겸손과 포용력을 배우기도 한다. 멀게만 느껴지던 하늘과 나의 거리가 가깝게 느껴지는 지금 수평선을 바라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제 멀리 바라만 보던 수평선 위에 서서 바다와 하늘의 끝을 잡고 있는 나이인 것 같다.

가을 나뭇잎이 초록을 버리고 저마다 본연의 색깔로 곱게 단장하는 계절에 문학기행으로 바닷가를 찾았다. 경주 양남면에 위치한 파도소리 길을 따라 주상절리를 바라보며 걸었다. 주상절리란 1000도가 넘는 용암이 흐르다가 차가운 공기와 바닷물과 만나면서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용암이 식을 때 다각기둥 모양으로 굳어져 생겨난 형상이라고 한다.

주상절리는 대부분 수직으로 발달하는데 경주 양남면 지역은 수직과 수평의 절리를 동시에 형성하고 있다. 파도소리 길을 따라 위로 솟은 주상절리, 기울어진 주상절리, 부채꼴 주상절리, 그리고 누워있는 주상절리 등 파도소리를 들으며 보는 풍광은 정말 아름답다.

주상절리 중 부채꼴 주상절리는 어느 여인이 벗어놓은 치마폭 같은 형상이다. 치마를 벗어 넓게 펼쳐놓고 그 여인 어디로 갔을까 궁금하다. 어떤 사연이 있기에 그 여인 천 년의 세월 동안 자신의 흔적을 거두지 못하고 바다에 벗어놓은 치맛자락 사이로 차르륵 차르륵 바닷물 들고 나는 소리만 들려줄까? 해안선을 따라 파도소리 길이 구부렁 구부렁 저만큼 걸어가고 있다.

파도소리 길은 해안을 따라 조성된 읍성항과 하서항 사이의 1.7㎞의 아름다운 산책로다. 오랫동안 군부대의 해안작전지역으로 공개되지 못하다가 군부대가 철수되었다고 한다. 파도소리 길에 미처 정리되지 않은 군 초소의 흔적은 아름다운 해안선에 옥에 티로 느긋하게 걷는 동안 눈에 거슬리는 경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바다경치와 해변의 가을 단풍을 바라보며 걷는 길은 마음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좋아지게 만든다.

파도소리 길을 뒤로하고 우리 일행은 감포로 향했다. 감포 앞바다 대왕암 앞에 서니 갈매기가 힘찬 날갯짓으로 문무대왕 능 주위를 맴돌고 있다. 파도는 용트림하듯 일어나 대왕암 바위에 높게 솟구쳐 하얀 거품을 이룬다. 파도는 신라의 용맹한 장수였나 보다. 대왕을 지키지 못한 회한을 죽어 파도가 되어 저리 통곡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죽어서도 동해를 지키겠다는 문무대왕의 나라사랑을 가슴에 새기며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돌기둥을 겹겹이 쌓아 놓은 것 같은 바위가 보인다.

나는 문무대왕 능 앞에서 저 돌을 가져다가 수문을 만들고 죽어서 대왕의 능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라를 사랑했던 문무왕은 동해를 지키는 수호신이 되고 용감했던 신라장수는 파도가 되었으며 나는 수호신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어 천년만년 바다에 살고 싶다.

해안선을 걷다가 다시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 끝 수평선이 가물가물 보인다. 늘 동경했던 바다의 수평선 꿈과 희망을 붙들고 세월의 파도에 휩쓸려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수평선의 끝에서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알아채고 남을 나이다.

거센 파도가 없다면 바다는 나에게 어떤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파도를 넘어 저 멀리 잔잔한 수평선이 보이듯이 멀리 바라보는 자만이 잔잔한 수평선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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