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활유가 필요해
윤활유가 필요해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3.10.22 19: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닌데….” 말끝을 흐리던 의사 선생님은 일단 무릎 관절 주사를 맞아 보자고 했다.

무릎이 아파 온 것은 1년 전의 일이고 며칠 전부터 다시 통증에 시달렸었다. 연골 주사는 다른 것과는 달리 맞을 때 아프기도 하거니와 맞고 난 후 느낌도 별로라서 차일피일 미뤄온 터였다.

관절은 다름 아닌 연결 부분이다. 뼈와 뼈 사이를 이어주면서 우리 몸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해 준다. 허리와 하체를 이어주는 게 있고 팔꿈치는 어깨와 팔을 이어 준다. 그리고 더 작게는 각 손가락 마디와 발가락을 이어주는 소소한 관절도 있으며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아무래도 굽혔다 펼 수 있게 하는 일이다.

가령 무릎의 관절이 없어서 일자로 걷는다면 어떻게 될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걷는 데는 탈이 없을지 몰라도 쉬기라도 할 때는 앉지도 못하고 그냥 서 있어야 될 테니 얼마나 피곤할 것인가.

피곤도 하려니와 방향 전환도 할 수 없다. 관절이 있으면 무슨 일을 하다가 앉은 채 몸을 틀어 뒤를 보기도 하련만 그렇지 않을 때는 하던 일을 내려놓고 일어서야 하는 등 번거롭겠다는 생각이 스쳐 간다.

관절은 그렇게 중요한 부위다. 우리가 로봇처럼 뻣뻣하지 않고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는 것도 말하자면 그 덕택이다.

흔히 쓰는 부위라서 그런지 노폐물도 자주 쌓인다. 지금 내가 무릎 관절 주사를 맞은 것도 관절에 젖산 등의 나쁜 물질이 쌓여 근육이 뭉치면서 통증이 오고 걷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오늘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에도 관절이 있다는 생각을 해 봤다. 냄비만 해도 몸통과 연결해 주는 손잡이를 보면 관절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몸체와 손잡이가 없어도 내용물이 끓기야 하겠지만 그게 다는 아닌 성 싶다. 뜨거워서 불편한 건 2차적 문제려니와 팔 다리도 없이 몸통만 있는 것처럼 우스꽝스럽고 일단은 모양새가 아니다. 그 자리가 또 대부분 오목한 것도 꼭 사람의 관절과 비슷하다는 필연을 제시해 준다.

냄비도 손잡이 부분에 때가 많이 낀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연결부분, 즉 반복해서 많이 쓰는 곳은 그만치 허술해지고 빨리 망가진다. 그러니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것은 자명한 일이다.

어제 아침 뉴스에 결혼생활 20년이 넘은 중, 장년층 부부의 황혼이혼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나 또한 결혼생활 20년을 막 넘어가고 있는 사람이라 관심 있게 들었다. 이혼 사유로는 성격차이가 가장 많았다. 황혼이혼의 후유증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부부가 갈라서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고독사와 극단적 자살 등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결국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기에 정부차원의 대책과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다.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지인들은 부부싸움 끝에 ‘그래 애들만 커 봐라’ 하고 벼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이들이 크면 부모의 역할이 또 그만큼 늘어나고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 맞춰지고 그러면서 더 많은 날을 살아가게 된다. 중, 장년부부의 관절 역할을 해 주는 것은 곧 자식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걸까.

아이들 때문에 일상생활이 부드럽고 대화를 하며 그나마 웃고 살아간다. 우리 부부의 대화 역시 초점은 늘 아이들이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관절이 없으면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운 것처럼 아이들 또한 우리 부부에게 윤활유 같은 존재였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주의하지 않아 관절이 상하면 건강에 무리가 오듯 나 또한 너무 아이들만 믿고 노력하지 않으면 자식이라는 귀중한 관절도 상하게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하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