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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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3.10.2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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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10월, 지금 온 나라가 축제인 듯하다. 고추축제, 생명 쌀 축제, 대추, 맥주, 불꽃축제까지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어렵다. 종류도 참 다양하다. 이름 지은 축제가 아니래도 가을은, 가을자체가 축제다.

맑은 하늘에 뭉게구름이 멋지게 떠 있으니 그대로 축제장의 배경이다. 들판에 익어가는 곡식들, 그리고 끝없이 넓은 황금들판, 밭두렁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듯 보이는 누런 호박덩이는 정물화요, 기와집 담장 안에 탐스럽게 달려있는 감도 풍경화다. 노랗게 익어가는 모과는 한편의 가을시요. 강가에서 은빛 머리를 흔드는 갈대의 몸짓은 누구도 흉내 낼 수없는 퍼포먼스공연이다.

먹을 건 또 얼마나 풍성한가, 금방 캐서 쪄 먹는 고구마, 알밤, 한 입 깨물면 단물이 뚝뚝 떨어지는 잘 익은 사과, 밭에서 금방 쑥 뽑아 먹는 무는 또 어떤가. 축제에는 먹을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가 있어야한다. 가을은 축제 중에서도 으뜸인 것 같다. 가을이 풍성한 것은 각종 축제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봄에 씨앗을 뿌리지 않고 여름을 잘 견뎌 내지 못하면 가을은 황량하고 쓸쓸 할 것이다. 거둘 것 없는 가을은 그야말로 풍요 속의 빈곤이다. 나는 젊어서는 매사가 다 불만투성이였다. 예쁘지 못한 외모부터 자신감 없는 성격,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여유롭지 못했던 가난, 어느 것 하나 맘에 드는 것이 없었다.

뜨겁다는 이유만으로 여름이 좋은지 모르고 보낸 것처럼 젊음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 줄 몰랐다. 지금 생각 하면 한심하고 어리석은 청춘이었다. 요즈음 뉘엿뉘엿 지는 해를 보고 있으면 근원을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복받칠 때가있다. 한 해 한 해 외로움의빈도가 심상치 않다. 그래서 이 가을이 더 안타깝고 소중한지도 모르겠다.

내 이웃에는 매일 축제로 사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이른 봄, 자기 집 마당에 제비꽃 몇 송이만 피어도 내게 전화를 한다. 지금 제비꽃축제 한다고 오라하고, 맛있는 차가 선물로 들어오면 차 마시러 오라하고 장미꽃 몇 송이가 피어도, 장이 맛있게 익어 가도 장독대로 사람들을 모은다. 그것도 양에 차지 않는지 아예 집 옆에 작은 황토방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 아니 이제는 초대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모인다. 그래서 그녀의 집에는 늘 사람들이 끓는다. 매일 축제날이다. 사람들이 왁자하게 모이고 웃음이 끊이지 않으니 행복하단다. 웃음을 누가 가져다주겠는가. 자기가 모으고 만들어서 행복을 가꾸는 그녀의 얼굴도 가을햇살처럼 맑고 환하다.

가을들녘을 바라보면 하나하나 감동이 아닌 것이 없다. 따끈따끈한 햇살은 축복이다. 알맞게 차가운 바람은 향기롭고 높고 맑은 하늘은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다. 내가 가을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머지않아 겨울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 일지도 모르겠다.

가을의 아름다움을 절실히 느끼는 것을 보면 나도 나이가 들었나보다. 하긴 겨울이라고 축제가 없을까. 얼음축제, 눈꽃축제 또 나름대로 겨울을 즐기는 법은 있게 마련이다. 나는 지금 마음껏 즐기고 있다. 아무리 좋은 축제가 있어도 자신이 즐기지 않으면 한낮 책속의 풍경에 불과하다. 나는 봄과 여름을 치열하게 살지 못한 죄책감은 미뤄놓고, 어차피 가을축제에 왔으니 맘껏 즐겨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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