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홀로 어디에
나만 홀로 어디에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10.14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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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음력으로 홀수 달에, 그달의 수와 겹친 날들은 모두 명절로 되어 있다. 1월1일은 설날, 3월3일은 삼짇날, 5월5일은 단오(端午), 7월7일은 칠석(七夕), 9월9일은 중양(重陽)이라 부른다. 이 중 가을에 속한 날은 중양(重陽) 하나뿐이다.

음력 9월은 가을 석 달 중 한가운데에 있는 중추(仲秋)라서 보통 이 무렵은 가을이 한창 무르익는 시기이다. 가을의 꽃인 국화가 활짝 피는 것도 이 때이고, 산수유(山茱萸)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는 것도 이 무렵이다. 그리고 음양오행(陰陽五行) 사상에 의해 양(陽)이 겹치는 날을 길일(吉日)로 간주하여 명절로 삼았던 것이다. 그래서 음력 9월9일 중양(重陽)에는 국화전을 만들어 먹고, 높은 곳에 올라 시(詩)를 짓기도 하고, 산수유(山茱萸) 열매가 달린 가지를 꺾어 머리에 꽂기도 하였다. 당(唐)의 시인 왕유(王維)는 타향에서 중양(重陽)을 맞은 소회(所懷)를 시로 읊었다.

◈ 구월 구 일에 산동성의 형제를 생각하며(九月九日憶山東兄弟)

獨在異鄕爲異客(독재이향위리객)

나 혼자 먼 타향 나그네 신세

每逢佳節倍思親(매봉가절배사친)

명절 때마다 고향 가족 생각 곱절로 간절하다

遙知兄弟登高處(요지형제등고처)

멀리서도 알겠거니, 형제들 높은 곳에 올라

遍揷茱萸少一人(편삽수유소일인)

산수유 머리에 모두 꽂았는데 유독 한 사람이 빠진 것을

※ 다른 형제들은 모두 고향에 있건만, 어찌 된 일인지 시인 혼자만 타향을 떠도는 나그네 신세이다. 거기다 철은 그리움 병이 돋는 가을이고, 날은 가을의 한복판인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이다. 그래서 시인은 해마다 이 날이 오면 고향의 가족이 평소보다도 곱절만큼 더 그리워진다. 단순히 중양절(重陽節)이 명절이어서만은 아니다. 이 날은 여느 명절과는 달리 가족이 한 데 모여 높은 곳에 올라 산수유 열매 가지를 꺾어 머리에 꽂던 추억이 깃든 날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시인이 타향에서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중양절을 맞은 것은 이미 한두 번이 아니다. 벌써 몇 해째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던 차에 또다시 중양절(重陽節)을 맞은 것이다. 시인의 몸은 비록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고향의 가족과 같이 하고 있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어도 마음으로는 다 보고 있다. 고향에 형제들이 한 데 모여 높은 곳에 올라 산수유 붉은 열매가 빼곡하게 매달린 나뭇가지를 각자 하나씩 꺾어 머리에 꽂은 모습을. 비록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것이지만, 그 모습은 너무도 선명하다.

이제는 기억에서조차 가물가물할 모든 형제들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인다. 시인이 고향을 떠나기 전에 형제들과 함께 높은 곳에 올라 산수유 가지를 머리에 꽂던 장면 그대로인데, 무언가 허전한 게 있다. 바로 시인만이 그 장면에서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움과 외로움을 이보다 더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시인의 감수성과 표현력이 새삼 대단함을 느끼게 한다.

날이면 다 같은 날이 아니다. 유독 외로운 날이 있고, 왠지 그리운 날이 있다. 그래서 음력 9월9일 중양절(重陽節)에는 타향에서 더욱 외로움을 느끼며, 가족 그리움이 더욱 절실해지는 것 아닐까? 가족과 함께 한 추억이 많을수록 그리움도 많아지겠지만, 이것이 결국 외로움을 치유하는 명약 노릇을 하는 것이 세상 이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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