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레미송 송편
도레미송 송편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13.09.30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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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시끌벅적하던 추석이 지났다. 송편 빚는 손맛은 느끼지 못했지만 두형님과 전을 부치며 음식 만드는 일이 예전과는 달리 즐겁기만 했다. 이제는 나도 시댁에 뿌리를 내린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결혼을 하고 시댁에서 보낸 첫 명절은 마음 둘 곳 없이 어렵기만 했다. 왜 그리 시어른들은 많은지 막내며느리인 나로서는 명절이 다가오면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더 불편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렇게 해를 거듭하며 어렵기만 했던 어른들과 편안하게 앉아서 담소도 나누게 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흘렀다.

차례를 지내려고 차례 상 앞에 서있는 가족들을 살펴보았다. 늘 가운데 자리를 지키시던 아버님자리를 큰 아주버님이 대신한지도 여러 해가 흘렀다. 그리고 올망졸망했던 조카들도 결혼해서 꼭 닮은 아이들을 데리고 차례를 지내러 왔다. 이보다 더 확실한 세월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또 있을까 싶다. 하기는 시댁 어른들이 어려워 늘 이방인처럼 쭈뼛거리기만 했던 나도 희끗희끗 머리에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느새 조카며느리들에게는 어려운 시어른이 된 셈이다.

올해는 유난히 아버님의 빈자리가 커 보였다. 막내며느리라고 많이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셨는데 제대로 자리 잡고 살아가는 모습을 끝내 보여드리지 못했다. 송편접시가 눈에 띈다. 송편 때문에 생긴 아버님과의 일화 때문인지 더욱더 아버님 생각이 간절하다. 금방이라도 막내야 하고 부르실 것만 같다.

시댁에서 송편을 처음 빚을 때였다. 워낙 대가족인지라 음식양이 엄청났다. 송편을 빚으려고 반죽해 놓은 것을 보았다. 커다란 함지박에 하얀 달덩어리들이 두둥실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덩그러니 한 덩어리 놓고 송편을 빚던 친정에서의 풍경과는 너무 달라 놀랍기도 하고 저걸 언제 다 하나 싶어 지레 겁이 났다. 어머님과 할머니가 송편을 빚어 놓은 걸 보니 한입 크기로 예쁘게도 만들어 놓으셨다. 나도 질세라 열심히 빚는데 아버님이 “막내야 어째 막내가 만드는 송편은 점점 커지는구나.”하시며 웃으셨다. 아차, 싶어 시루를 보니 맙소사 송편이 도레미 송을 부르는 것도 아닌데 점점 커져 어느 사이 주먹만 해져 있었다.

이때다 싶었다. “아버님 저 송편 만들기 정말 싫어요. 차라리 주방에 가서 설거지할래요.” 라며 벌떡 일어나 버렸다. 내심 기대했던 막내며느리의 송편이 점점 커지는 모양을 보며 얼마나 어이가 없으셨을까. 지금 생각해도 주먹만 한 송편이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송편 때문에 아버님을 즐겁게 추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다행스럽기도 하다.

요즘에는 송편을 집에서 직접 빚기보다는 예쁘게 만들어진 송편을 떡집에서 사다 차례 상에 올리는 집이 많다. 식구가 핵가족화 되어 만들 사람도 먹을 입도 그만큼 줄어들었지만 바쁘고 번거롭다는 이유가 한몫했을 터였다. 하지만 송편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다면 기꺼이 수고로움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송편의 생김새는 반달모양이다. 달을 보고 소망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반달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보름달이 뜨는 한가위에 반달 모양으로 송편을 만들었을까. 여기에도 선조들의 깊은 뜻을 엿볼 수 있다. 보름달은 곧 기울지만 반달은 조금씩 차올라 만월이 되니 반달은 희망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온가족이 모여 소망이 이뤄지기를 바라며 희망을 빚는다고 상상해보라. 얼마나 멋진 풍경이겠는가.

만약에 내가 송편의 의미를 예전에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손재주 없는 나는 여전히 아버님 앞에서 도레미송 송편을 빚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떡시루 가득 점점 커지는 반달송편을 빚어 희망을 채웠을 것이다.

올 추석은 유난히 달빛이 청아하고 밝았다. 그 속에서 아버님이 환하게 웃으며 한 말씀 하시는 것 같았다.

“막내야 도레미송 송편도 좋으니 내년 추석을 기대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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