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편지
가을편지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3.09.23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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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어느 새 가을입니다. 낮에는 여전히 더운데도 조급한 마음 때문인지 다들 가을이라고 서두릅니다. 사실 그럴 만도 한 게 들판의 곡식은 그 새 황금빛을 띠고 산들도 옷 갈아입을 준비에 정신이 없는 듯 하네요. 투명한 햇살과 선들한 바람에 마음이 자꾸 착잡해졌고요.

얼마 전 큰아이를 독일로 보내고 엄마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멀리 보내고 자주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목이 메는 것이 우리 엄마도 이랬겠구나 했습니다. 세월이 좋아져 직접 얼굴을 보면서 통화를 하고 카카오 톡으로 안부를 전하지만 늘 갈증이 납니다. 간절히 누구의 안부를 이렇게 궁금해 했던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 엄마도 그랬겠구나 했습니다.

요즘 여기 세상은 참 어지럽고 복잡하답니다. 봄과 가을은 실종될 직전인 듯 하고, 지난 여름은 아열대로 변해 가는지 갑작스러운 소낙비로 우산도 없이 나갔다가 비를 맞는 등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많았습니다. 변한 게 어디 날씨뿐이겠어요. 잊을만하면 터지는 실종사건, 강간, 폭행 사건으로 딸을 가진 저 같은 부모는 자나 깨나 걱정이랍니다.

엊그제 저녁을 먹으면서 애 아빠가 딸들이 자기에게 최고이자 영원한 ‘甲’이라고 해서 웃었는데 저 또한 엄마에게는 영원한 ‘甲’의 자리였을 거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우친 기분입니다. 아침에는 또 핸드폰 문자를 보고 서둘러 집을 나가면서 엄마 생각을 했더랍니다. ‘~~로 오세요, ~~해 주세요’ 라고 요청하는 문자를 받았거든요. 가끔 터무니없는 요구사항도 있었건만 별달리 따져보지도 않고 들어주는 것을 스스로 보면서 나는 과연 엄마 말씀을 얼마나 잘 들었나 싶은 반성도 했었지요. 저 역시 딸아이들처럼 말도 듣지 않고 거역했을 텐데 별다른 꾸지람 없이 제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셨을 엄마 생각에 눈시울이 자꾸 뜨거워지네요.

큰 아이를 독일로 보낸 제 마음과 처음 부모님 슬하를 떠나 광주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던 그 밤, 아버지가 밤새 담배를 피우시며 밖을 내다 보셨다는 이야기를 엄마한테 들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무뚝뚝하게만 보였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눈시울을 붉혔던 기억이 새롭군요. 큰아이가 떠나던 날 도착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던 차에 아이가 잘 도착해서 다시 기차를 타고 유스호스텔에 도착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안도와 함께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낯선 곳에서 30킬로그램의 무거운 가방을 낑낑대고 끌고 갔을 생각만 해도 괜히 마음이 아팠던 것입니다.

말을 안 듣고 골질을 할 때마다 ‘니가 부모가 되어야 내 마음을 알지’라고 하시던 엄마의 말씀이 새록새록 가슴에 와 닿습니다. 이럴 때 내 곁에 계시면 뛰어가 없는 애교도 부려보고 따듯한 밥상을 마주하고 싶은데 그리 할 수 없으니 아쉽고 속상해 편지로 대신합니다.

그 세상에서도 아부지랑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가요 어제 저녁에는 친정 집에 가는 꿈을 꾸었답니다. 백일홍이 만발한 집 앞에서 엄마가 호미질을 하고 있는 꿈이었습니다. 환하게 웃고 계신 꿈을 꾸고 ‘엄마가 저 세상에서 편히 지내시는갑다’고 새벽에 중얼거렸습니다. 그리고 꼭 내 마음인 양하여 정채봉 시인의『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이라는 시를 떠올렸습니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아니, 아니, 아니, 아니,/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으로 들어가/엄마와 눈 맞춤도 하고, 젖가슴도 만지고

그리고 한번만이라도/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만/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엉엉 울겠다.

엄마 모쪼록 건강히 계세요. 이 가을이 지나면 또 편지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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