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1)
굴뚝(1)
  • 이재성 <수필가>
  • 승인 2013.09.16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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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재성 <수필가>

가을비가 몰고 온 냉기는 한겨울 추위 못지 않을 때가 있다. 설마, 설마 하다 몸과 마음까지 얼어 붙게 한다. 어제 같은 날이 그 격이다. 추적추적 가을비가 청승맞게 내리더니 무방비 상태에서 급소를 한대 맞은 듯 밤이 되자 급작스레 썰렁해졌다. 장작 난로라도 피워 가장(家長)의 체면을 세워 본다고 한 것이 결국 변변치 못한 사람으로 낙인이 되고 우리 내외지간은 더 냉랭하게 얼어붙었다.

작년에도 요긴하게 잘 써먹던 난로다. 어려서 군불을 때본 경험이 있어 난로에 불 부치는 것쯤은 식은죽 먹 기다. 폐 종이상자를 찢어 난로 밑에 불쏘시개로 깔고, 마른 나뭇가지를 가는 것부터 굵기 순으로 차곡차곡 넣은 후 불을 지폈다. 헌데 이게 웬 일인가? 활활 타올라야 할 불꽃은 보이지 않고 매캐한 연기만 쉼 없이 새어 나오고 있는 것 아닌가. 처음에는 그저 궂은 날씨의 저기압 탓이려니 했다. 장작을 쑤석거리며 제 아무리 부채질을 해 보아도 연기만 더 날 뿐 불붙을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집안이 연기로 가득 찼다. 모든 창문을 열어 제켜 보지만 소용없다. 인내하며 부엌일을 하던 안식구의 얼굴에 근심 반, 원망이 가득하다. 눈을 비비고 콧물을 훌쩍거리며 마른 기침을 연신 하더니 결국엔 쇠파리처럼 쏘아붙인다. “오소리라도 잡을 작정이유? 변변치 못하게 시리 일삼아 앉아서 불 하나도 제대로 못 지피고…….

여자들(?)은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렇잖아도 눈치가 보이고 속에서 천불이 나는 판에 옆에서라도 가만히 있어 주면 감지덕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설마하니 이 나이에 불장난이 재미있어 재티를 뒤집어 쓰고 눈물 범벅을 해가며 허둥대겠는가? 비 맞은 중처럼 멎을 줄 모르는 아내의 비아냥에 잘 버티고 있던 내 이성(理性)의 고리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내 이 놈의 난로를 낼 당장 고물장수에게 팔아 치우고 말 거여. 그래야 당신 맘이 편하지.“ 한마디 던지고는 바가지에 물을 가득 퍼다 난로 안에 훌훌 뿌렸다. 피시식거리며 잔불 꺼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야유하고 비웃는 듯한 그 소리에 비위가 더 상했다. 바가지를 주방으로 홱 집어 던지고는 서로 말없이 돌아섰다. 우리는 어제, 각 방에서 옆구리 시린 밤을 보내야 하는 큰 벌을 받았다.

홧김에 큰 소리는 쳤지만 정작 고집을 피워 고물장수를 부른다는 것은 소갈머리 없는 짓이다. 대체 원인이 무엇일까? 안식구가 출근하기 바쁘게 식식거리는 마음으로 난로를 부위 별로 잡아 제쳤다. 연통을 뜯어 내고 구석구석 살펴보다, 아뿔싸! 뒤 통수를 치고 말았다. 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연통 중간 부분에 개폐(開閉) 장치를 해 놓은 것이 있는데, 착각을 하여 열어 놓는다는 것이 그만 꼭꼭 닫아 놓고 부채질만 열심히 해 댔던 것이다. 불문으로 들어간 공기가 연소를 시킨 후 굴뚝을 통해서 연기는 원활하게 빠져 나가는 소통이 이루어져야 불이 잘 피는 것이 당연하거늘, 난 그 순리에 역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이 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궁이만 뜯었다 맞췄다 하는 것은 미련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 옛날에 어른들은 아궁이에 불이 피지 않으면 오히려 아궁이는 뒷전에 두고 굴뚝 청소부터 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 할 무렵이면 연중행사로 굴뚝 후비는 모습을 봤다. 선인들의 경험에 의한 지혜를 볼 수 있는 낡은 그림이다.

굴뚝의 기능은 배출이며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물리적인 동력장치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회가 진보하고 발달한 우리의 현시대에서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이 상호간의 평균적 소통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부장적 시대의 하향식 소통은 이 제 막힌 굴뚝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부자지간이라고 해서 예외 일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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